죽음 앞의 친구

2024-10-28

영화 ‘룸 넥스트 도어’(2024)를 봤다.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종군기자 출신의 마사는 친구 잉그리드에게 자신의 죽음을 옆방에서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는 책을 내기도 한 잉그리드는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마사의 의지에 이내 설득당한다. 둘은 외딴 숲속의 집으로 향하고, 밥을 해 먹고 영화를 보며 일상적인 나날들을 보낸다.

종군기자로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마사에게도 자신의 죽음은 어려운 과제이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정확히는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딸과의 해묵은 갈등, 퇴화하는 기억력, 암을 이겨내라고 말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시시각각 신체에 번지는 고통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치료 과정. 영화의 원작 소설 『어떻게 지내요』(2021)에서 마사는 한층 더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친다. “이 모든 고문을 사서 겪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구토, 설사, 피로…, 끔찍해, 끔찍해…. 그리고, 결국엔…헛된 희망이었지. 헛된 희망에 절대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죽음으로 가는 길은 지긋지긋함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림 같은 배경에서 아름다운 미감으로 펼쳐지는 영화를 보면 한편으로는 마사가 부러울 법도 하다. 마사는 비교적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결정을 내릴 힘과 돈이 있었다. 문미순의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2023)이 그리는 죽음은 어떠한가. 관절염과 대장암 후유증, 치매로 집에서 딸의 간병을 받다가 딸이 집을 비운 사이 실수로 넘어지거나. 뇌졸중과 화상 후유증, 알코올성 치매로 집에서 아들의 간병을 받다가 사고가 벌어지거나. 죽음은 모두의 과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유난히 더 가혹한 과제이다. 그들의 죽음 옆에, 혹은 나의 죽음 옆에는 누가 있을 수 있을까? 모르는 이들을 애도하게 되는 밤이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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