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소고기 시장 개방 제외…농업계 숨통 트여
美, 사과·LMO 감자·검역 절차 등 압박할 수도
"사과·LMO 감자 수입할 가능성 낮아" 의견도
전문가, 미국산 대두 수입량 확대 가능성 제기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한미 무역협상에서 쌀과 소고기 개방이 최종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됐다. 정부와 농업계는 민감 품목인 쌀과 소고기를 절대 내줄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무역협상 이후 비관세 장벽, 특히 검역 절차 완화에 집중하며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부분은 사과 수입 허용, 유전자변형농산물(LMO) 감사 도입, 체리 등 신선과일에 대한 검역 기준 완화 등이다.
이는 한국 농업과 소비자 안전에 직결된 사안으로, 앞으로도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이미 수입하고 있는 미국산 대두 수입량을 더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한다.
◆ 정부, 쌀·소고기 민감품목 '레드라인' 지켰다
2일 농업계에 따르면 이번 협상에서 쌀과 소고기 개방이 제외된 것은 국내 농업계가 거세게 반발했던 민감 품목에 대한 미국 측 요구를 정부가 일단 막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쌀은 한국 농업의 근간으로서 식량안보 측면에서 보호 필요성이 매우 크다. 1990년대 말부터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된 이후에도 쌀은 무역 개방 대상에서 예외로 남아 있다.

쌀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국민의 주식이며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품목이다. 정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 수입을 긴급 상황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또 지난 201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라 관세화를 시행하며 513%의 고율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한국의 쌀 관세율을 짚으며, 미국산 쌀 수입을 압박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 연간 쌀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은 40만8700톤으로, 미국 물량이 이중 13만2304톤(32%)을 차지한다. 쌀 개방은 WTO 규약에 묶여 있기 때문에 한미 양자 간 협상체계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미국이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소고기 또한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의 역사적 경험이 있어 국민 민감도가 높은 품목이다.
당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확대를 둘러싸고 대규모 국민 반발과 촛불 시위가 이어지면서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를 다시 30개월령 미만으로 수입하기로 하고, 검역 기준을 강화해 국민 안전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산 소고기 최대 수입국으로, 지난 2022년 25억2400만달러의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점도 시장 개방을 막은 요인 중 하나다.
◆ 美, 사과·LMO 감자 요청 카드 꺼내나…"두고 봐야 알 것"
미국은 쌀과 소고기 개방이 어려워지자, 비관세 장벽을 완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특히 과채류에 대한 검역 절차 완화 요구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체리 등 미국산 신선 과일은 국내 수출의 중요한 품목으로 미국은 이들 과일에 적용되는 검역 규정을 완화해 수출 확대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검역 당국은 외래 병해충 유입 방지를 위해 검역 기준을 엄격히 유지 중이다. 올해 국내 검역 대상 병해충은 300여종에 달하며, 병해충 유입 시 농산물 생산과 품질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농업계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사과 검역 문제는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오랜 쟁점이었다. 미국은 1990년대 초 한국에 사과 검역 완화를 요청했지만, 올해 기준 검역단계 8단계 중 2단계에 머물러있다.
사과 검역 문제는 오랜 협상에도 불구하고 농업 보호와 소비자 안전을 이유로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도 주요 비관세 장벽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LMO 감자의 수입과 재배 허용을 협상 안건에 포함할 가능성도 나온다. LMO는 과학적으로는 안전성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가 있으나, 국내에서는 소비자와 농업계의 반대가 매우 크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을 열고 검역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개방이 될 수 있냐는 질의에 "상세 항목은 조율과 협상 여지가 남아 있는 부분"이라고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미국이 사과 검역과 LMO 감자 수입을 압박한다는 전망에 대한 의구심도 나온다.
한 농업계 전문가는 "30년전 미국이 사과 검역을 요구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 무역협상 의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배경도 살펴봐야 한다"며 "수출국(미국)이 원했으면 진작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을까"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사과 검역 완화 요청이 30년 전에 있던 건 맞지만, 지금 미국의 우선순위는 사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검역 절차 완화 등 농산물 비관세 장벽을 두고 한미 양국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농산물 문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의 입장이 다른 부분이 있다며 "(비관세 장벽 등) 이 부분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이번 무역협상에서 농업을 완전히 방어했기 때문에 미국산 사과가 우리나라로 수입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다만 기존에 수입하고 있던 품목인 대두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대두 수입량은 114만8399톤으로 이중 미국산은 57만9217톤으로 집계됐다. 올해 1분기 기준 대두 수입량 32만747톤 중 미국산 대두는 30만5146톤으로 전체의 95.1%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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