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와 ‘진정성’

2024-10-02

원래 이 주제로 칼럼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실에서 나왔던 황당한 세 글자 ‘진정성’이란 말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지난달 12일 대통령실은 ‘세계 자살예방의날’인 이틀 전(10일), 김건희 여사가 마포대교를 도보로 순찰하는 사진에 비판이 잇따르자, “진정성을 봐주면 좋겠다”는 해명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진정성의 근거로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는 행보는 꾸준히 할 예정이고,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비판이 쏟아진 지점은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는 행보가 아니었다. 개선·조치·격려·당부와 같은 말, 일선 공무원들에게 지시하는 듯한 모습, 통치자의 태도였다.

이른바 ‘통치자 코스프레’의 불길함은 이미 여러 차례 감지됐다. 대선 직전인 2022년 1월 공개된 ‘서울의소리’ 녹취록에서 김 여사는 ‘남편’이 아니라, “내가 정권 잡으면…”이란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총선을 앞둔 올 1월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였다. 본인이 어떤 자격으로 연락하고 대신 사과하나.

대통령실이 해명에서 밝혔듯 진정성의 요체는 꾸준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하고 일관된 행동으로, 또한 약속을 지키는 모습으로 뒷받침된다. 김 여사의 진정성을 얘기할 때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장면은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일 것이다. 2021년 12월 본인의 논란으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후보 부인으로 국민 앞에 선 김건희는 대국민 사과를 하며 두 가지를 약속했다. “남은 선거 기간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과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것이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달라”고 읍소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내의 역할을 한참 벗어난 행보에, 최소한 왜 나서는지 설명조차 없다. 국민들은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약속을 어긴 것보다 더 큰 문제로 생각되는 점은 지난 1월 총선을 앞두고 공개된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김 여사가 보낸 텔레그램 문자이다. “본인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할 의사가 있으니 검토해달라”는 내용이다. 주목할 부분은 ‘필요하다면’이다. 잘잘못에 대한 사과가 아닌, 정치적 유불리가 기준이 된, 전략으로서의 사과다. 매사에 이런 식이니 진정성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가.

지난 7월엔 김 여사 변호인이 김 여사가 검찰 조사 당시 검사 앞에서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여러 가지 정무적 판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죄를 하고 싶어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밝혔다. 검사 앞 대국민 사과라는 황당한 발언에, 당시 보수·진보 언론 할 것 없이 비판 사설을 실었다. “변호사를 통해 알려진 이런 ‘비공개 사과’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재 여부도 불확실한 발언을 대리로 전하며 ‘진심’ 운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 여사의 진정성은 누구에 대한, 어떤 진정성인가. 국민에 대한 진정성을 말한다면 두 가지를 실천하라. 우선, 김 여사 자신이 그렇게 염려하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고 가급적 대중 앞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연이어 드러나는 각종 의혹들, 그 의혹들을 무시하는 듯한 공개행보에 국민들은 노여움을 거두긴커녕,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또 다른 하나, 진정성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극적으로 ‘김건희 특검법’ 통과를 돕고 수사에 협력하는 것이다. 21대와 22대 국회에서 잇달아 발의된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포함된 혐의가 8가지로 늘었다. 도이치모터스와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불법행위 의혹, 인사개입 의혹, 채 해병 사망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의혹, 최근 새로 불거진 총선 공천개입 의혹까지 그야말로 전방위다. 의혹들을 하나하나 풀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을 입증하라. 현 정부의 대선 캐치프레이즈였지만 지금은 조롱거리로 전락한 ‘공정과 상식’을 조금이라도 되살리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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