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모순’을 거부하라

2024-10-01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정부 출범 때 웅장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2년 반 전 청와대를 벗어나던 순간이 그중 하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는 방식이 너무 제왕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윤 대통령은 단호했다. “정부를 담당할 사람의 자기 철학과 결단도 중요하다”며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였다. “국가 최고 의사결정자가 일하는 모습을 국민이 지켜볼 수 있고 노출돼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는 포부는 당찼다.

제왕 버리고 공복 선언했지만

김 여사 의혹·특권 얽히고설켜

초심대로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정신적 교감(交感)”을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언제 일인가 싶지만, 기자들과의 출근길 문답 ‘도어스테핑’도 비슷한 취지였다. 불편한 질문도 국민 앞에서는 감수하고,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대통령의 초심은 선명했다. 제왕이 아닌 공복(公僕)으로의 환골탈태, 대통령의 시선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졌다.

임기 반환점에 선 지금, 날카로운 첫 결단의 추억은 사라졌다. 거대한 청사진은 꼬일 대로 꼬였다. 일하는 걸 보여주긴 하는데 공복의 품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이 보고 싶은 모습 대신 권력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노출한다. ‘소통의 의지’라 쓰는데 ‘불통의 고집’으로 읽힌다. 취임 때 포부는 고스란히 ‘용산의 모순’이 됐다. 그 결과가 지금 마주한 20%대 지지율이리라.

모순의 한가운데에 영부인이 있다. 2년여 동안 김건희 여사는 정부의 ‘X맨’(게임 등에서 몰래 팀을 망치는 훼방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심스러웠던 정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미심쩍었던 과거의 기억과 기묘하게 이어진다. 의심이 과하다던 지지자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윤 대통령이 바랐던 국민적 교감은 공분(公憤)으로 현출되고 있다.

개혁의 출발점인 용산은 의혹의 진원지가 돼버렸다. 용산 청사 리모델링 사업은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위법이 확인됐다. 절차 무시 도급, 불명확한 계약, 국고 손실 등이 드러났다. 의심 대상 회사 중엔 하필 김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콘텐츠의 전시회를 협찬한 곳이 있다. 그 회사가 협찬한 2015년의 ‘마크 로스코 전(展)’의 경우, 김 여사가 여러 개의 상까지 받아 포털사이트 인물정보의 수상 이력으로 남아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의심의 꼬리는 쉽게 끊기지 않는다. 같은 전시회 협찬사 중엔 문제의 도이치모터스의 이름이 있다. 10여 년 전 김 여사와 그의 어머니가 20억원대 투자 이익을 얻고 그 시기에 주가조작이 있었던 회사다. 김 여사의 연루가 정상적인 투자인지, 단순한 ‘쩐주’였는지, 공범 또는 방조범인지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다른 혐의자가 2심 유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검찰은 결론을 못 내리거나 안 내리고 있다.

주가조작 멤버 중 한 명은 지난해 순직 해병 사건 때 ‘VIP’에게 사단장 구명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녹취록 속 V가 누구인지는 미궁에 빠져 있다. 돈키호테 같은 목사의 언더커버 취재로 폭로된 명품백 수수 의혹이 빙산의 일각처럼 느껴진다.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의혹은 얽히고설켜 정부 성패를 좌우할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이 ‘김건희 왕국’으로 전락했다는 탄식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는 야당의 비판을 수긍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그런 숙성의 시간을 거친 특검법이 대통령의 책상 위에 다시 올랐다.

윤 대통령은 반환점에서 맞은 최악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그 동력은 국민의 눈높이에서만 찾아질 것이다. 억울하게 무고를 당해도 꼼짝없이 검찰청사에 불려 나가는 국민이 대통령의 판단에 교감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에서 대파와 배추를 사고, 마포대교와 장애아 시설에서 눈물을 짓는다고 얻어지는 공감이 아니다.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라는 요행에 기댈 시간은 더더욱 없다. 지금 윤 대통령이 단호히 거부해야 하는 건 용산의 모순이다. 제왕과 결별했던 초심처럼 다시 한번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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