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심화시키는 정책도 탄핵해야···생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④

2025-01-05

“집권 내내 윤석열은 기후파괴 정책만 펼쳐왔다. 기후위기를 심화시킨 정책도 함께 탄핵해야 한다.”

지난달 18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기후정의 오픈마이크’에 참여한 이들이 성토했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다음 정부로 미루고,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환경영향평가를 무력화하며 설악산 케이블카 등 환경파괴 사업에 매진한 점도 성토 대상이었다. 이들은 기후부정의를 탄핵하고 기후정의를 이뤄내자고 외쳤다.

기후재난 피해는 주거 약자에게 집중된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은 한여름 창문도 없는 방에서 하루 세 번 밥을 해 먹는다. 그 일상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쪽방촌 주민이 아닌 이들은 알기 어렵다. 2022년 여름엔 폭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주거 취약층을 기후재난에서 구해낼 공공임대주택 사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공공개발로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달 5일이면 그 약속을 발표한 지 꼭 4년째 되는 날인데 아직 첫 단계인 지구 지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약자를 돌보겠다는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매년 큰 폭으로 깎았다.

4년째 유보된 동자동 공공임대주택 약속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33)는 지난달 26일 기자와 만나 “탄핵을 바라지만 탄핵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윤석열이 뽑혀 나간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수많은 윤석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쪽방 임대차 계약서에 “매년 주거 급여가 인상되면 월세도 따라서 인상하는 데 동의한다”는 조항을 넣고, 여름에 너무 더워서 방 안에 선풍기를 들여놨더니 “월세를 2만원씩 더 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그런 ‘윤석열’의 하나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사이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안을 통과시켜 부자들을 대변한 여야 정당도 있다.

비상계엄은 민주주의를 위협했지만 동시에 연대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쪽방촌 주민과 함께 탄핵 집회에 참여한 이 활동가는 탄핵집회가 각자의 고난을 안고 모인 사람들이 함께 저항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든 현장이라고 평가했다.

탄핵 집회 때 쪽방촌 주민들은 ‘선결제’ 커피에 감동했고, 자신들도 십시일반 돈을 모아 떡을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나눴다. 이 활동가는 시민 반응이 궁금해 소셜미디어를 찾아봤다. 어려운 상황에서 대단하다는 반응이 다수였지만 쪽방촌 주민이 왜 공공임대주택을 요구하는지, 그간 어떻게 싸워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보였다.

적정 임대료로 쫓겨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은 주거 불안을 겪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활동가는 쪽방 주민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기후정의가 멈춰선 안 된다고 했다. 안정적인 주거 보장은 시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자재를 무엇으로 할지, 에너지원을 뭐로 할지까지 배우고 토론하고 요구하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민주주의”라고 했다.

‘형식화된 대의제’가 기후위기의 원인

서강대 인권실천모임인 노고지리에서 활동하는 차송현씨(26)는 취약계층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라고 했다. “기후위기와 맞닿아 있는 민주주의는 제도화된 민주주의보다 훨씬 저항적이라고 봐요. 의회를 통해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직접 요구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죠.”

문형욱 ‘기후위기기독인연대’의 공동대표는 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정권교체를 이루거나 선거제도를 바꿔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성장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공감대입니다. 그게 없다면 소수자의 목소리가 국회에 들어가도 결국 소수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 1987년 민주화 이후 경제성장을 문제 삼는 거의 모든 사회운동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것 외엔 근본적인 해법이 없다고 봤다.

문 대표는 최근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반대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성장과 개발이라는 명분이 허구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적자가 예상되는데도 공항을 짓는 건 기후위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철새와 동백, 상괭이 등 다양한 생명이 사는 섬 전체를 거의 파괴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지역발전이라는 명분과 표를 얻겠다는 계산에서 더불어민주당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모두 결국 경제성장 앞에서는 한편이라는 것, 기후위기는 이들에게 맡겨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은 첫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6일 인천 영흥도를 거쳐 순천과 하동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돌고 있었다. 얼마 후면 석탄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김용균씨 6주기 추모 행사에도 참여했다.

한 집행위원은 “내란 사태를 종결시키고 윤석열 퇴진으로 열릴 대선과 개헌 등 여러 국면에서 사회대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자본의 이익에 포획된 민주주의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윤석열 퇴진만으로 끝나면 발전 노동자의 정의로운 전환은 불가능하다. 광장이 압도할 때만이 한국 민주주의에 그래도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생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해결방안이 급진적일수록 ‘정치’가 중요하다. 한 집행위원의 말이다. “근본적인 해결 방식이 이것이라고 설득하고 그 과정에서 당신들의 삶이 조금 달라질 순 있어도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석탄발전소 노동자를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의 부담을 전가해 일자리를 잃게 한다면 많은 사람이 그런 변화에 저항할 테니까요.” 온실가스를 크게 내뿜는 기업이나 계층에게 책임을 묻고 그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녹색당 당원이자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동물들의 행진’ 실무자로도 활동하는 문 대표는 동물과 자연 등 비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 ‘생태헌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수자 중 동물이 가장 취약한 소수자인데 이들의 권리를 신장시키면 그 위에 있는 모든 존재의 권리가 같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왕거누이 강이 2017년 법인격을 부여받은 세계 최초의 강이 됐고, 에콰도르 헌법도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핫핑크돌핀스가 제주남방큰돌고래에게 법인격을 부여하자는 운동을 벌였고, 제주도는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모두 제도보다 강력한 사회운동의 기반을 갖추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 여정은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이고, 길게 가는 싸움은 즐거워야 한다. 차씨가 최근 ‘광장에서 시 쓰기’라는 모임을 만든 이유다. “시는 사회운동이나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거친 사회운동의 언어를 거리감 없게 번역하는 일이기도 하죠. 사회운동은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관계를 맺고 확장하는 과정인데, 그사이에 시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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