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역사상 처음으로 상업용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업무용 컴퓨터 전체에 깔린다.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와 손을 잡으면서다. 또 미 해군은 팔란티어의 데이터·AI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핵잠수함 정비와 조선소 공급망을 재설계하기로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비 확대 기조에 힘입어 미국식 ‘AI 군산복합체’ 구도가 본격화한 셈이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9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X(엑스)에 올린 동영상에서 “미국식 전쟁의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그 철자는 A-I”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구글의 ‘정부용 제미나이(Gemini for Government)를 새 전산망 플랫폼인 ‘제너레이티브 AI(GenAI.mil)’를 통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제미나이 기반 생성형 AI 도구가 미 국방부인 펜타곤과 전 세계 미군 기지의 모든 업무용 데스크톱에 설치된다는 의미다. 미 국방부와 미군 기지 관계자들이 제미나이를 이용해 심층 자료 조사, 보고서·브리핑 문서 작성과 서식 작업, 영상·사진 분석을 기존보다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게 헤그세스 장관의 설명이다.
악시오스는 “상업용으로 개발된 생성형 AI 도구가 펜타곤 전체에 대규모로 배치되는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기존에는 국방부 일부 부서와 실험 사업에서만 생성형 AI가 운용돼왔다. 구글 측은 해당 AI가 비기밀 업무에 활용될 뿐 국방부 데이터가 공개형 학습 모델에 적용될 일은 없다고 확인했다.
AI는 미 군 당국의 실제 현장에도 파고들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 해군이 핵추진 잠수함(핵잠) 등 핵 관련 전단의 공급망 관리를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에 맡기는 4억4800만 달러(약 66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존 필런 해군장관은 WSJ에 “이 계약이 우선 핵잠수함에 초점을 맞추되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포함한 다른 함정과 항공기로도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재원은 지난 7월 통과된 트럼프 대통령의 지출 법안에서 충당된다.
목표는 부품 부족과 일정 관리 실패로 늘어지는 정비 기간을 줄이고, 새 잠수함 건조와 기존 함정의 전면 정비 일정을 앞당기는 데 있다. 지금은 조선소·기지 인력들이 스프레드시트로 부품을 일일이 추적하지만 쉽OS로 불리는 해당 소프트웨어는 주요 조선사·공영 조선소, 그리고 100곳이 넘는 협력업체의 생산 능력을 한 화면에 띄우고 어느 시점에 어떤 부품이 부족해질지 미리 예측해 정비 일정을 다시 짜도록 돕는다고 한다. WSJ는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를 인용해 “몇 달이 아니라 수년 단위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전했다.
통상 미 해군 잠수함은 6~8년마다 한 번씩 대규모 정비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인력과 자재가 제때 모이지 않아 잠수함이 그저 대기만 하는 버린 시간이 많다”는 게 WSJ의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행정명령으로 투자를 통해 조선 능력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한 대목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악시오스는 이런 흐름을 미군과 실리콘밸리의 급격한 밀착으로 설명했다. 펜타곤이 중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만능해법(all-purpose answer)으로 AI를 전략적으로 채택했고 실리콘밸리도 여기에 호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헤그세스 장관이 내세운 ‘치명성의 문화’에도 주목했다. 이는 미군이 언제 어디서 싸우더라도 적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만큼 치명적인 전투력을 유지하겠다는 슬로건이다. 악시오스는 “초지능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군사력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기술 업계의 과거 입장이었다”며 “하지만 최근엔 연방 정부가 국방력 기술에 돈을 쓸 준비만 돼 있으면 업계는 언제나 그 기술을 팔 준비가 돼 있다”고 짚었다.
미 육군이 지난 6월 신설한 예비군 파견부대 ‘리저브 디태치먼트 201’이 대표적이다. 실리콘밸리의 임원급 리더를 영입해 군이 민간으로부터 인재 관리와 기술 발전에 도움을 받기 위해 창설된 부대다. 애덤 보스워스 메타 최고기술책임자(CTO), 케빈 와일 오픈AI 제품 총괄, 샴 산카르 팔란티어 CTO , 밥 맥그루 팔란티어·오픈AI 출신 전문가가 이 조직에 중령으로 임관했다. 악시오스는 “실리콘밸리의 전문성을 거대한 국방 관료 체계 안으로 신속하게 들여보내는 게 목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 내부 또는 미국 여론에 따라 군과 AI 업계의 밀착 기류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악시오스는 “AI·자율주행·감시 기술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이나 미 국내 도시 군 배치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면 밀착 기류가 다시 한 번 분기점을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