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주민통제 강화 악법’ 쏟아낸 이유

2024-11-28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지금 북한 내부 상황은 어떨까. 좋지 않을 것이다.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군 간부 사상 교육 강화는 주요 간부의 충성심 약화를 최고 지도부가 얼마나 우려하는지 보여준다.

최근에는 주민 통제를 대폭 강화한 몇 가지 법령을 주민들에게 공개했다. 이들 법령이 금지하는 행위들을 볼 때 북한 정권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 듯하다. 첫째, 북한 주민에게 한국이 다르고 더 나은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권의 의지를 북한 사회에 강제하기 위한 구속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한 말투 사용·영화 금지 이어

미성년범죄방지법·주민신고법도

민심 이반 따른 정권 불안감 반영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평양문화어보호법은 북한 주민이 남한 영화를 보거나 언론 기사를 읽는 것을 금지하고, 심지어 남한 말씨 사용까지 금지한다. 한국 언론 기사를 읽는다는 것은 조선중앙통신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 이는 북한 정권의 선전·선동이 먹히지 않고 정권의 정통성 마저 위협할 수 있음을 내포한다.

북한에서 이들 법을 위반하면 사형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남한 문화의 인기에 대한 북한 정권의 불안감을 방증한다. 외국 영화를 시청했다고 사형까지 당한다면 이는 북한이 가입한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반이다. 정권을 믿지 않고 외부에서 대안 정보를 찾는 주민은 북한 정권엔 큰 위협이다. 결국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사상적 신념의 약화로 이어지고 이는 정권에 대한 직접적 도전으로 악화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외부 정보의 유입을 막으려는 북한 정권의 온갖 노력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간 대북 방송인 국민통일방송(UMG)이 올해 초 비밀리에 북한 주민을 상대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100명 중 4명이 남한 TV 프로그램을 접했다고 답했다. 북한 주민에 전해지는 한국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해 북한 정권은 ‘오물 풍선’으로 보복하고 있다. 북한처럼 폐쇄된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은 외부 정보가 유입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빨리 광범위하게 퍼지느냐도 중요하다.

북한은 정권의 구속력 약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성년범죄방지법’을 도입했다. 이 법은 패싸움과 폭행, 이색적인 머리와 몸단장을 금지한다. 이는 폭력적인 청소년 문화가 퍼지고 있으며 이들이 북한 정권 권위에 도전할 뿐 아니라 조폭 문화로 커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법은 북한 노래를 왜곡해 부르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북한 청소년이 혁명가에 불경스러운 가사를 붙여 부르는 모양이다. 학교에 가지 않거나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은 1990년대 대기근 시절의 꽃제비를 떠오르게 한다.

최근 도입된 ‘군중신고법’이야 말로 북한 정권이 직면한 난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법에는 개인과 단체가 신고해야 할 행위를 나열하고 있다. 첫째 신고 내용으로 ‘국가 최고 지도부의 신변 안전에 위험을 주거나 당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행위’를 적시한 대목에서 북한 정권의 불안감이 드러난다.

수입보다 지출이 더 큰 경우도 신고 대상에 포함했는데 이는 북한에 만연한 부패 문제를 엿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이 이런 법까지 필요함을 느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은 오랜 세월 복잡하고 치밀하게 얽힌 주민 감시 체계에 의존해왔다. 각 단위에 소속된 주민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정치회의에 참석해 다른 주민의 잘못을 공개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도 왜 북한 정권은 이런 신고법을 새로 도입해야 했을까. 주민 감시 체계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북한 정권은 내부의 정보원을 잃은 셈이 된다. 주민들의 비판 체계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정권의 통제권이 제약을 받는다는 뜻이다.

위에 언급한 법령들은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군 1만2000여 명 중에 사망자가 나오기 이전에 도입했다. 북한군 희생자가 발생하면 북한 정권이 이 법령들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북한 내부 문제가 정치적으로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주민의 마음을 잃고 있는 북한 정권이 억압을 통해 충성을 강제하려 하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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