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복지부 추경사업 줄삭감
농식품부만 정부원안 '무사통과'
李대통령, 농업 콕 집어 힘 실려
송미령 장관 유임 국회 대응력↑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모든 부처의 사업이 칼질됐는데, 우리부 예산은 원안통과라니…이 정도면 기적이죠"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심사가 끝나고 정부세종청사 복도에서 만난 한 농림축산식품부 간부가 웃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교육부, 복지부, 문체부 그리고 해수부까지 추경예산이 줄줄이 삭감된 와중에 농식품부만 유일하게 정부안이 원안 통과됐기 때문입니다.
국회 예결위 예산소위 회의록을 보면 교육부는 4단계 두뇌한국(BK)21 사업 증액분 12억8600만원과 국립대 시설 보수사업 증액분 1957억원이 깎였습니다. 복지부도 기초연금 증액분 3289억원이 날아갔습니다. 문체부의 K-콘텐츠 펀드 출자 예산 850억원 증액 요청도 집행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감액됐습니다.

상대적으로 예산 규모가 작은 해수부도 여수광양항만공사의 재정 여건 개선을 위한 상환금 3658억원에 대한 세입 감액안은 통과돼지 못했습니다. 특히 김건희 여사가 관심 뒀던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 사업'은 21억6500만원이, 외교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예산(기감액 200억원, 2차 추경 400억원)은 전액 삭감됐습니다.
그런데도 농식품부는 ▲쌀값 안정대책 ▲가축질병 방역 ▲농촌 취약계층 지원 등 2차 추경 정부안은 그대로 통과됐습니다. 추경 심사를 받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던 강형석 차관과 박수진 기획조정실장은 문밖에서 대기만 하다 세종으로 돌아갔습니다. 120쪽에 육박하는 예산소위 회의록에서 농식품부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관가에선 '이게 가능하냐'는 시기 어린 말들이 오갔죠.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농식품부 사업들은 소액에다가 쌀·물가처럼 국민 체감도가 높아 손대기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선도 있습니다. 국회 한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농촌 민심을 건드리기 싫었을 것"이라며 "농촌 표심이 여전히 정치의 캐스팅보트"라고 말했습니다.
농식품부 내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과장은 "우리보다 예산이 더 적은 해수부도 사업이 감액됐는데, 이번에는 진짜 운이 좋았다"며 "추경 때마다 우선순위 조정이니 뭐니 해서 몇 건씩 잘려 나갔는데, 이번에는 꼭 필요한 사업들이 그대로 통과됐다"고 웃음지었습니다.

농식품부의 무사통과에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농식품부에 든든한 방어막이 된 것도 한몫했다는 평입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물가안정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았습니다. 취임 직후 연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선 "서민 장바구니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라며 쌀, 계란 등 농축산물 가격 관리 강화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농업에 대한 시각 자체가 바뀌었다는 말도 나옵니다. 한 농식품부 간부는 "그동안 농업은 경제에서 늘 뒷전이었는데 이번 정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업을 전략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정권 차원의 관심이 커진 덕분에 예산 심사에서도 방패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기류 속에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새 정부 들어 유일하게 유임된 것도 은근히 힘이 됐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장관 교체 없이 안정적으로 국회를 상대한 게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며 "농식품부가 기재부와 추경작업을 할 때 영향을 준 것 같다"고 귀띔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세가 본예산 심사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추경은 긴급성이 중요해 소규모 민생사업에 관대하지만, 본예산은 얘기가 다르다"며 "내년 대규모 SOC 사업이나 신기술 관련 예산 심사 때는 농식품부도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결국 농식품부의 이번 '무사통과'는 민생 밀착형 사업 구조와 정부 기조, 정치적 고려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추경은 하반기 동안 진행해야 하는 사업들을 담은 거라면 본예산은 내년 1년을 이끌 농정방향"이라며 "예산 작업을 면밀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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