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맞은 대감님들과 맞담배질…그들은 ‘기생 재상’이라 불렸다

2025-01-09

이난향의 ‘명월관’

지난 이야기

조선 최고의 기생 이난향은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는 풍족했다. 그러나 벼슬에서 물러난 아버지가 물산 객주업에 뛰어들었다 실패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어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열두 살이던 막내딸 난향을 노래서재, 즉 기생양성소에 보낸다. 노래를 배운 지 13일째 이를 알게 된 아버지는 크게 노해 난향을 나무랐으나 이미 기적(妓籍·기생등록대장)에 올랐으니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듬해 난향은 임금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뵈는 진연에 선발돼 경성행 열차에 오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음악교육기관인 정악전습소에서 노래와 춤을 배우며 그럭저럭 한 해를 넘기자 진연이 곧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라에서는 화관몽두리와 연두색 치마저고리 일습을 내렸다. 기생들은 3개월간 맹연습에 돌입했으나 진연으로 순종이 옛일을 다시 되새길 것을 두려워한 왜놈들의 반대로 그만 중지되고 말았는데.

제2화. 나라 잃은 ‘마지막 군주’의 서글픈 진연(進宴)

진연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잔치 중 하나다. 임금이 직접 나오는 엄숙한 잔치이기도 하지만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는 잔치인 만큼 기생들이 빠질 리 없다.

진연이 있을 때에는 몇 개월 전부터 뛰어나거나 재질이 특출한 기생을 서울로 뽑아 올렸다. 장악원에서는 이들 기생들을 만에 하나 어전에서 실수가 없도록 하기 위해 맹연습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연에 뽑힌다는 것은 기생으로서는 더없는 영광이다. 진연에 참가했다가 대감들의 눈에 들어 대감이 떼들이면 금방 마나님으로 불렸다. 양반이 기생을 사랑해 맞아들이는 것을 ‘떼들인다’고 했다. 기생은 이들 재상들과 함께 맞담배질도 할 수 있었으니 자연히 ‘기생재상’이란 말이 생겨 나오기도 했다.

대감의 눈에 들지 못한다 하더라도 진연에 참가한 기생에게는 나라에서 피륙 등 선물을 내렸으니 이 선물을 갖고 고향으로 내려가도 ‘진연에 뽑힌 기생’으로 뽐낼 수도 있었다. 진연은 기생들의 과거를 보는 곳이라고나 할까. 어떻든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전회에서도 적은 바와 같이 나는 이 진연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갔고, 장악원 봉상시에서 약 3개월 동안 진연에 관한 예행연습을 했다. 이 연습대로 실시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연습한 진연의 순서와 모습을 잠깐 적어 볼까 한다.

전통 진연과 포구락 놀이, 그리고 지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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