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오늘은 아름다운 꽃들이 소녀의 주위를 환히 밝혀주고 있네!
글렌데일시의 중앙 도서관 건물 뒤쪽, 주차된 차들 너머로 단아하게 앉아 있는 ‘소녀상’을 삼사 개월 만에 찾아오니 꽃들에 에워싸여 아름다웠다. 지난 2013년 7월 신문에서 이 동상에 대한 기사를 읽고 처음 찾아 왔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리움인지, 연민인지를 경험하게 된 것은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생긴 후의 감정이다.
무척 더웠던 한여름에는 주위에 심겨져 있는 무궁화 나무들이 메말라 있었다. 집에서 재배하던 선인장 화분 두 개를 소녀의 벗은 발 옆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물통 세 개를 가득 채워 주위 나무들에 뿌려 주었다.
몇 주 후에 가보니, 두 개의 화분 중 산스베리아는 자취를 감추었으나, 나머지 이름 모를 다 육종이 심겨진 화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전에 못 보았던 새하얀 꽃이 잔잔하게 웃고 있는 새로운 화분이 놓여 있어 나를 기쁘게 했다. 매일의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도, 문득 문득 소녀를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다. 그러다가 드디어 찾아간 오늘, 아름다운 장미 꽃이 병에 꽂힌 채 활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연보랏빛 국화 화분이 흐드러지게 태양 빛에 반짝이며 악수를 청하는 듯했다.
꽃에는 조그마한 팻말이 꽂혀 있었다. ‘Korean-American Growing Up Volunteers’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한인 소년, 소녀들이 따뜻한 마음들을 남겨 놓고 간 듯했다.
이 젊은이들도 나처럼 애처로운 심정을 느꼈었을까. 우리의 어머니들이 과거에 들려주셨던 ‘위안부’에 대한 두려운 마음들과 그 아픈 역사를 알고 있을까.
검은색 화강암으로 곱게 조각된 이 소녀상의 모습은 그냥 한번 보고서 지나쳐 버리기에는 마음을 휘어잡고, 되돌아서서 그 얼굴을 다시 보며 심중에 남아 있는 깊은 뜻을 캐묻게 한다.
머리의 가리마는 일본군에게 강제로 붙잡혀 집을 떠나게 됨을 상징하고, 쥐어진 주먹은 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라는 소녀의 결심을 뜻한다. 벗겨진 두발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로 허공에 맨발로 머물러 있다가 차갑고, 인정없는 전생에 버려져 있음을 뜻하고,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아직도 정의가 구현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죽어 가는 생존자들을 뜻한다.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이미 사망한 피해자들과 우리 모두를 연결해 주는 연결망이다. 소녀의 그림자는 긴 세월을 침묵 속에서 지내 온 할머니들을 상징하고, 그림자 속의 나비는 언젠가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상징한다.
소녀상은 이십만 명의 아시안과 네덜란드 여성들이 일본 제국 군대에 의해 강제로 잡혀가 1932~1945년 성적 노예로 되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2012년 7월30일 글렌데일 시는 Comfort Women Day‘의 선포로, 미 의회는 ’House Resolution 121‘을 통해 일본 정부가 역사적인 책임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카이저 병원에서 은퇴한 이후 글렌데일 시의 작은 집으로 이사 온 지 십여 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저 아름답지만 한이 많은 소녀와 같은 도시에서 살아온 지도 꽤 된 셈이다. 동상이 처음 세워졌을 때 일부 일본계 미국인들이 도시 상대로 소송하면서 동상을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시정부의 공무원들이 끝까지 힘을 모아 소녀상을 지켜 온 것에 대해서 큰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2세, 3세들이 장미와 국화를 가져와 소녀를 위로하고, 무궁화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큰 위로를 느낀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