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키움은 KBO리그 샐러리캡(114억 2638만원)을 반도 채우지 못했다. 연봉 상위 40명 합계 금액이 56억 7876만원에 불과했다. 미비한 투자로 프로야구 생태계를 해친다는 프로야구선수협회의 규탄까지 받았다.
그랬던 키움이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4일 송성문과 6년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하며 120억원 전액 보장 조건을 내걸었다. 송성문은 2026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송성문은 KBO리그 비FA 다년계약 중 역대 여섯 번째로 총액 100억원을 넘어섰다. 앞서 구자욱(5년 120억원), 김광현(4년 151억원), 구창모(6년 125억원), 고영표(5년 107억원), 류현진(8년 170억원)이 있었다. 그 중 옵션을 제외한 연봉 총액만으로 100억원을 넘는 선수는 김광현과 류현진뿐이다. 키움은 총액으로도, 보장액으로도 역대 다년계약 타자 중 최고액이라는 놀라운 타이틀을 송성문에게 안겼다.
송성문은 2015년 드래프트에서 2차 5라운드 전체 49순위로 넥센(현 키움)의 지명을 받았다. 데뷔 후 7시즌 동안 두드러진 활약이 없었으나 지난해 타율 0.340, 19홈런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활약했다. 올해도 주전 3루수로서 전 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97, 16홈런을 기록 중이다.
송성문의 몸값은 극적인 성적 상승세보다 훨씬 가파르게 치솟았다. 2024년 1억 3000만원이었던 연봉이 올해는 3억원으로 올랐다. 다년계약 기간 연봉의 1년 평균인 20억원은 올해 연봉의 660%가 넘는다.
허승필 키움 단장은 4일 통화에서 “FA 시장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송성문을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라며 “내년에 다른 구단과 FA 영입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지금 과감하게 계약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무성했던 송성문 트레이드설은 일단락됐다. 키움은 2026시즌 안우진과 송성문을 투타 중심으로 해 본격적인 순위 경쟁에 뛰어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 단장은 “내년에 성적을 내려고 하는 과정에서 송성문을 통해 중심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키움의 이 다년계약을 순수한 ‘프랜차이즈 스타 붙들기’로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키움의 구단 운영 흐름과 전혀 통하지 않는다. 키움은 앞서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에게도 다년계약을 안기지 않았다. 미국 진출 의지를 굳이 꺾지 않았고 포스팅시스템으로 진출시킨 뒤 이적료를 받아 구단을 운영했다. 이제 1년 잘 한 송성문에게 김광현, 류현진급 계약을 안긴 데 대한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샐러리캡 하한제를 회피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는 시선이 첫번째로 따른다. KBO는 샐러리캡 최소 금액을 정하는 하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바로 지난해 샐러리캡 소진율이 49.7%에 불과한 키움을 겨냥한 제도다. 샐러리캡 본연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키움의 구단 운영을 리그가 제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키움이 느닷없이 초대형 계약을 터뜨린 것이다. 대형 계약을 해놓고 샐러리캡 의무 소진율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 매년 송성문의 연봉을 배분할 수도 있다. 키움은 송성문 계약에 대해 “매년 연봉이 다르게 책정돼 있으나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정반대의 방식으로 다년계약을 샐러리캡에 이용한 사례가 있다. SSG는 2022년 국내 복귀한 김광현과 4년 총액 151억원(연봉 131억원, 옵션 20억원)에 비FA 다년계약을 맺으며 첫해 연봉을 무려 81억 원으로 책정했다. 계약 첫 해 연봉을 최대한 많이 지급해 이듬해부터 시행되는 샐러리캡 제도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다.
키움은 이를 부인한다. 허 단장은 “샐러리캡 하한선 논의가 KBO에서 나온 건 5월이고 구단이 송성문과 계약 논의를 시작한 건 4월이다”라며 “제도 도입이 확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번 계약은 (샐러리캡 하한선 제도와)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한 가지, 키움은 송성문과 6년짜리 초대형 계약을 맺으면서도 “미국 진출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밝혔다. 핵심 선수를 다른 팀에 뺏기지 않고 붙잡아두기 위한 비FA 다년계약의 본래 취지와 동떨어진 발언이다.
허 단장은 “우리 팀은 소속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라며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송성문의 미국 진출 가능성은 그대로 열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허 단장은 “한국에서 금액적으로 대우를 받아야 미국에 가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 쉽게 마이너리그로 내리지 못한다”라며 “송성문이 미국 진출 의사가 있다면 조건을 보고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성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아직 구체화된 바가 없다. 가능성만 제시될 뿐이다. 120억 원으로 훌쩍 뛴 송성문의 가치는 훗날 포스팅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계약 역시 ‘선수를 팔아 연명하는 구단’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