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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식품이나 음료를 개발하고 소비자를 납득시켜 식문화의 일부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세대를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무릇 새로운 것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식품 및 외식 분야에서는 ‘익숙한 새로움’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한다. 익숙하지만 새로움이 느껴지는, 혁신적이지만 기존 식생활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신메뉴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에서 성공이 확인된 메뉴를 ‘추격자’ 전략을 통해 살짝 다른 유사 메뉴로 개발하는 것은 선구자가 들인 비용과 노력의 10% 정도로도 가능하다. 우리가 원조를 굳이 찾고 그 변천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것은 그 선구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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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닮아 있는 불고기와 야키니쿠(焼肉)의 격렬했던 원조 논쟁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출신 교포들의 식문화에서 출발했다는 것으로 논의가 정리되고 있다. 오히려 미스터리는 다른 곳에 등장하는데, 일본의 북쪽 지방 향토 음식으로 알려진 양고기구이 요리인 ‘징기스칸’이다.
한국인이 이 징기스칸 요리를 처음 접하면 상당히 당황하게 된다. 중앙은 볼록하고 테두리 부분은 오목하여 양념한 고기의 육수가 흘러 고이도록 설계된 징기스칸 불판이 우리나라 불고기 불판의 형태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테두리 부분의 육수에 야채를 익혀 먹다가 나중에 면까지 말아먹는 것까지 닮아 있다. 우리의 불고기가 영향을 준 걸까? 우리가 영향을 받은 걸까? 아니면 제3의 기원이 있는 걸까?
징기스칸 요리는 1930년대에 일본에서 의도를 가지고 개발한, 몽골과는 관련이 없는 근래의 음식이다. 당시 대륙 진출의 야욕을 꿈꾸던 일본은 군수물자용 양모가 필요했고, 북부 지역에서 양을 대규모 사육했다. 따라서 양모를 생산한 후 도축한 양고기를 소비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 양고기 레시피를 개발·보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요리가 징기스칸이다. 현대 징기스칸 레시피는 양고기를 구운 후 양념에 찍어 먹는 형태도 있지만, 초기 레시피는 불고기처럼 양념한 양고기를 굽는다.
일본 내 자료에 의하면 징기스칸은 양고기를 많이 소비하던 만주 지역의 카오양러우(烤羊肉)라는 중국식 양념 양고기구이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한 요리라고 명시되어 있다. 1930년대 초기 징기스칸 불판은 철망 형태이거나, 중앙이 볼록하지만 테두리 쪽에 흘러내린 육수를 가둘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형태다. 단지 얇게 자른 양념 양고기를 불판에 구워 먹는 요리였다. 굽는 동안 흘러내리는 양념 양고기 육수에 야채를 함께 익혀 먹는 현대의 레시피와는 달랐다. 그러다가 1950년대 들에 불판 테두리 부분이 깊어지며 육수에 야채와 면을 함께 익혀 먹는 형태의 징기스칸 불판(냄비)이 보급된다. 이때부턴 확실히 우리의 불고기 불판과 매우 유사한 모양이다.
국내에선 1960년대에 일본식 징기스칸 요리 전문점이 성행했다가 80년대를 지나며 사라졌다. 60, 70년대 서울에서 유행했던 징기스칸 요리는 전골 요리에 가까웠다. 80년대 자료를 보면 징기스칸은 신선로에 넣어 끓여 먹는 형태로 바뀌어져 있고, 주로 한식집에서 취급하다가 자취를 감춘다. 물론 양고기가 아닌 소고기를 주로 썼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불고기 불판의 등장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북식이 넘어왔다는 설도 있고, 미군 드럼통으로 처음 만들었다는 인터뷰 내용도 있지만 명확히 파악이 안 되어 있다. 1961년에 국내에서 제작·개봉한 영화 ‘삼등과장’에서 가족들이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불고기 불판이 지금의 형태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연이라기에는 징기스칸 불판의 형태와 너무나 흡사하다. 일본의 자료에 의하면 이 형태의 불판은 징기스칸에 사용되기 전 이미 일본에 존재했으며, 1950년대부터 징기스칸 전용 조리도구처럼 흔히 활용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이 형태가 정착되었는지는 그들도 명확히 파악을 못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 형태를 썼고, 그들은 왜 불판의 모양을 바꾸었을까?
불고기에 대한 국내 자료의 수준은 여전히 빈약하고 접근성이 썩 좋지 않다. 우리의 불고기와 일본의 야키니쿠, 징기스칸, 그리고 스키야키는 분명 큰 연결 지점들이 있으나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원조 논쟁은 단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원조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에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혁신하는 출발점이 된다. 1930년대에 불고기를 외식으로 유행시키며 고급 식문화의 장을 열었던 불고기 선구자들은 이미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더 늦기 전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 관련 학계가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보존하고, 공유해야 한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