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년 경찰의 ‘크라임 노트’
화투에 마법을 부리는 기술자들,
유혹과 속임수를 오가는 미인계,
한 판 승부에 거액이 오가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드라마틱한 전개….
‘사기도박’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의 차이는, 관객이 웃고 박수 치는 대신 누군가는 전 재산을 잃고 눈물짓는다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여름 오후, 한 중년 남성이 경찰서를 찾았다.
쉰 목소리, 그러나 진심이 묻어나는 떨림.
박영수(가명, 56세)씨는 조그마한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고스톱 치다가 털리셨구만….
처음엔 그저 도박하다가 돈을 잃은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고스톱 점수는 이상했다.
고스톱에서 1200점이 나온다고?
계산기를 꺼내 숫자를 두드리던 형사들의 눈썹이 들썩였다.
뭔가, 구린내가 났다.
우리는 고스톱에서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는 점수와 실제 도박판에서의 기술, 그리고 전문가의 속임수 사이의 차이를 정밀하게 분석해 나갔다.
우리는 전직 ‘타짜’ 출신 도박 전문가를 은밀히 섭외해 시연해 봤다.
화투를 섞고, 패를 던지고, 조작하고….
그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에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단순한 ‘기술’이나 ‘마술’이 아니었다.
눈속임은 기본이요, 사람의 감정까지 정교하게 조작하는 ‘사기’였다.
그리고 그가 꺼낸 비장의 무기.
‘탄화투’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게 화학 처리된 화투.
패의 순서와 흐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건 도박이 아니라 시나리오였다.
승패는 게임 전에 결정됐고, 피해자는 단지 그 무대에 앉은 관객이자 희생자였다.
무장해제시킨 한마디, ‘오빠’
박 사장은 한 달 전, 골프 연습장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라운드를 앞두고 샷을 점검하러 갔는데 모르는 미모의 여성이 다가왔다.
44세 이미경(가명)의 말씨는 세련됐고, 눈웃음은 따뜻했다.
“오빠.”
그 짧은 한마디에, 박 사장의 경계심은 눈 녹듯 녹았다.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이내 내연 관계가 됐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양평의 한 식당으로 그를 초대했다.
“친한 언니가 오빠 얘기를 듣고 꼭 뵙고 싶대요.”
그는 의심 없이 따라나섰다. 하지만 몰랐다.
그 길이 곧 ‘도박의 덫’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 식당은 도박장이었다.
이미 수차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꾀어낸 범죄조직의 무대.
정교한 팀, 숨겨진 얼굴들
수사가 진전되자 단순한 연애 사기쯤으로 봤던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영화 ‘타짜’보다 더 정교한 팀플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