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가 KCGI를 고소했다는 기사를 준비하며 접촉한 모든 취재원과 토론을 벌인 주제가 있다. ‘미래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어떻게 예측하고, 준비·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취재원들이 상당히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견해를 제시해준 덕에 많이 공부하는 기회가 됐다.
모든 취재원과의 대화가 어째서 한 곳으로 수렴했을지 궁금해졌다. 일부러 물어보고 다닌 것도 아니고, 흔한 경험도 아니어서 연구해보니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발단은 KCGI가 DB하이텍 주식을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로 매도한 것이 옳은 일인지를 따지면서부터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KCGI가 겉으로는 행동주의를 외치며 그린메일(경영권을 위협해 단기 차익만 챙기는 행위)을 자행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블록딜은 KCGI가 단기 차익을 실현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모든 취재원과 이를 의논하는 것까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블록딜 이후 시장의 움직임에 대해 취재원마다 제각각 다른 예측을 내놓고, 이를 근거로 블록딜이 옳은 대응이었는지 판단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자유경쟁이 특히 중요시되는 증권가에서 ‘시장’의 뜻이 큰 의미를 지니는 만큼, 취재원들도 자신의 판단이 시장의 뜻과 부합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과거 정치권을 취재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생각이 다른 정치인이 모두 ‘당심’을 가져다 쓰는데, 당심의 방향이 말하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해당 정치인들도 자신의 판단이 당의 뜻과 부합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시장’과 ‘당심’은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한 단어로 묶어내 하나의 방향으로 해석해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 한 명의 마음을 알기도 어려운 일인데,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것도 한쪽으로 몰아간다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취재를 하다 보면 이런 개념이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심하면 현실과 정반대로 몰아가는 일도 심심치 않다. 불특정 다수의 뜻이라 반박할 사람도 없다는 점을 노린 수사학적 기법인데, 과하게 사용하면 자신의 주장을 볼품없게 만든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