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새 재정 규정 도입을 언급하며 “K리그에도 한국형 SCR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자축구의 낮은 연봉 상한선, 비용 절감 위주 단기 처방 등을 선수협은 지적했다. “억지로 누르는 제도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선수협은 중요한 전제를 잊었다. “EPL처럼 K리그가 돈을 버는 리그인가”다.
EPL은 지난달 2026-27시즌부터 ‘구단 수입의 85% 이하까지만 선수단 비용에 사용한다’는 SCR(Squad Cost Ratio)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빅클럽들이 서남아시아, 미국 등으로부터 엄청난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과도하게 많이 지출한 선수단 비용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또 EPL은 SSR(Sustainability & Systemic Resilience) 도입도 확정했다. 구단의 단기·중기·장기 재무 건전성을 수시로 테스트하는 제도로 역시 구단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EPL은 ‘앵커링(Top-to-Bottom Anchoring)’, 즉 사실상 연봉총액 상한제 도입은 부결했다. ‘앵커링’은 리그 최하위 구단 수익의 5배 이상을 어느 팀도 쓰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제도다. 자금력이 충부한 빅클럽, 상위권 도약을 위해 투자가 필요한 중위권 클럽들이 반대했다. 세계 최고 축구판인 EPL이 앵커링 도입까지 표결에 붙일 정도로 구단 지출은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그런데 선수협은 구단 재정 건전화를 추구하는 SCR, SSS에 대한 언급은 최소화하고, 강력한 샐러리캡과 흡사한 앵커링 부결만을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구단 재정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선수들의 권리만 주장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EPL에는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국내외 중계권료, 광고·후원금, 입장수입 등이 엄청나다. 빅클럽 1년 매출은 우리 돈으로 1조원이 훌쩍 넘는다. 선수도 돈을 벌지만 구단도 돈을 벌고 있다. K리그는 어떤까. K리그 모든 구단은 지자체 예산 혹은 기업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구단이 혼자 힘으로 마련한 스폰서는 숫자만 많을 뿐 자잘하고 큰돈이 안 된다. 관중 수입, MD상품 수익은 구단 매출의 10% 안팎에 머문다. 우승상금, 중계권도 미비하다. 자생력을 말하기에는 매출 규모도, 상업 인프라도, 마케팅 역량도 EPL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미약하다. 구단의 대차대조표상 흑자를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없다. “K리그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결국 선수뿐”이라는 자조도 들린지 오래됐다. K리그1 국내 선수 평균연봉은 2억3500만원이고 서울과 전북은 4억원 안팎이며 울산은 6억원이다.
선수협은 “선수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들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권리가 존중받으려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생태계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 선수는 리그 상품성을 키우는 핵심 자산이자, 브랜드 공동 생산자다. 선수들은 축구를 잘해야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 기여 프로그램 확장, 경기 매너와 리그 품질 개선 노력, 구단 수입 창출, 구단 콘텐츠 제작 협력, 미디어·팬 접근성 확대 등에도 기여해야 한다. 선수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구단이 소유한 자산이다. 축구 이외 다른 활동이라도 구단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숙한 마인드가 필요하다. 리그와 구단이 재정적으로 단단하지 않으면 선수들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
EPL은 너무 많이 벌고 너무 많이 써서 선수단 연봉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반면 K리그는 돈은 못버는데 선수단 인건비는 계속 상승한다. 선수협이 한국형 SCR 도입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선수들이 감수해야할 부분을 먼저 연구하고 마련해야 한다. 구단과 리그 수익 증대와 재정 건전성 정책을 함께 설계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단의 재정적 리스크를 일정 부분 인지하고 참여해 책임지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게 선행되지 않은 한국형 SCR 논의 제안은 검토할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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