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킨 고교 역사교과서를 제작한 한국학력평가원이 표지갈이를 통해 교과서 검정 신청 자격을 획득한 것은 검정취소사유에 해당한다는 감사원 판단이 나왔다.
28일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최근 ‘교육부·평가원의 역사교과서 검정’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친일 등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킨 학력평가원의 고교 역사교과서가 ‘검정 역사교과서 출판실적 기준을 위반했고, 이는 검정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최근 3년간 검정출원 교과 관련 도서를 출판한 실적이 없음에도 2007년에 출판한 문제집의 표지만 교체해 제작한 2023년 문제집으로 납본증명서를 발급받아 이를 출판실적 증빙으로 제출했다”고 봤다. 교육부의 ‘검정심사 기본계획 및 검정 실시 공고’를 보면 교과서 검정을 받으려면 검정출원 교과 관련 도서를 최근 3년간 1책 이상 출판해야 한다.
감사원은 학력평가원이 2023년 낸 문제집이 “2007년 문제집의 표지만 교체해 발행일자가 2023년 7월20일로 표기돼 있을 뿐 2006년까지의 기출문제만 반영돼 있었다”고 했다.
감사원은 또 “2023년 문제집을 10∼20부 제작해 납본증명서를 발급받고자 국립중앙도서관에 2부 제출하고 판매·유통하지 않았다”며 “해당 문제집을 서점 등에 판매·유통하지 않고 단지 제작한 것만으로는 출판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감사원은 학력평가원의 ‘표지갈이’를 통한 문제집 출간이 규정 위반이라고 봤다. 감사원은 “실제로는 최근 3년간 검정출원 교과 관련 도서를 출판한 실적이 없음에도 2007년에 출판한 문제집의 표지만 교체해 제작한 2023년 문제집으로 납본증명서를 발급받아 이를 출판실적 증빙으로 제출한 것은 규정 위반”이라며 “이는 검정합격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감사원은 교육부에 “검정출원 교과 관련 도서 최근 3년간 1책 이상의 출판실적 기준을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며 “출판실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는 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에 대해선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38조(검정합격취소 등) 1호에 따라 적정한 조치가 하길 바란다”고 통보했다.
학력평가원 교과서는 지난해 교과서 내용, 필진 구성, 검정 과정 등에서 논란이 됐다. 친일 인사를 옹호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축소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한국학력평가원 필진은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직접적 평가는 유보하고, 주제탐구 형식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학생들에게 물었다. 중립적인 서술로 보이지만 역사학계는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친일파의 책임을 희석시킨다고 비판했다.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는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장기 집권’으로 표현하는 등 독재 정권을 옹호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던 교과서포럼의 <한국현대사>가 주제탐구 자료로 인용됐으며,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를 ‘반란군’으로 서술한 뒤 문제가 되자 반란군이란 표현을 삭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