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B형간염 조기 치료 시 간암 발생·사망 위험 줄어든다

2025-03-04

임영석 교수팀, 한국 등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 실시

간수치·간경화 상관없이 혈중 간염 수치 따라 조기 치료해야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만성 B형간염은 간암 원인의 70%를 차지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게 중요한데, 현재 B형간염 치료지침은 간수치가 크게 상승했거나 간경화로 진행된 환자에 한해 항바이러스 치료를 개시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기존 치료기준인 간수치 혹은 간경화 여부와는 상관없이 혈액 내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따라 항바이러스 치료를 일찍 시작해야 만성 B형간염이 간암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4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동 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팀은 한국과 대만의 병원에서 간수치(ALT · 알라닌 아미노전이효소 수치)가 정상이고 간경화가 없지만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중등도 이상인 만성 B형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조기에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은 그룹은 치료 없이 관찰만 한 그룹보다 간암이나 간부전, 간이식, 사망, 그밖에 심각한 이상반응 발생 위험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만성 B형간염 환자들이 치명적인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간염 초기 단계에서부터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해야 함을 시사하며, 이에 따라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중등도 이상인 환자는 간수치와 관계없이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도록 현행 치료지침을 조정하는 데에도 강력한 근거를 제시했다.

연구결과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란셋 위장병학·간장학(The 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 피인용 지수 30.9)' 최신호에 게재됐다.

임영석 교수팀은 2019년 2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한국과 대만의 22개 병원에서 만성 B형간염 환자 734명을 연구에 등록했다. 환자들은 간경화가 없었고 간수치가 정상 범위였으나, 혈중 간염 바이러스 농도가 중등도 혹은 높은 수준(4 log10 IU/mL에서 8 log10 IU/mL)에 해당됐다.

임 교수팀은 이들을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는 그룹(369명)과 치료 없이 관찰만 하는 그룹(365명)으로 무작위 배정했다. 치료군은 B형간염 항바이러스 치료제인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TAF)를 하루 한 알 복용했다.

이후 약 17개월(중앙값) 동안 두 그룹을 추적 관찰하며 간암, 간부전, 간이식, 사망 등 주요 평가 지표 발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치료군에서는 주요 평가 지표 발생률이 연간 100명당 0.33명, 관찰군에서는 연간 100명당 1.57명으로 나타났다. 즉 치료군에서 간 관련하여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률은 대조군에 비해서 79% 더 낮았던 것이다. 치료군에서는 간암 발생만 확인된 반면, 관찰군에서는 간부전과 사망 사례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평가 지표를 제외하고 나머지 심각한 이상반응이 발생한 비율은 치료군에서 6%, 관찰군에서 7%로 두 그룹이 유사했는데, 이는 조기 항바이러스 치료가 부작용을 높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임 교수팀은 이전 선행연구에서 서울아산병원의 환자 빅데이터를 활용해 간경화가 없고 간수치가 정상인 만성 B형간염 환자에게서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혈액 1mL당 1백만 단위(6 log10 IU/mL) 근처일 때 간암 발생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세계 처음 보고했으며, 이를 대만과 홍콩 등 대규모 다국적 환자를 대상으로 재차 입증한 바 있다.

또한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위험 구간에 있던 환자들은 장기간의 치료에도 간암 발생 위험도가 절반 정도 낮아질 뿐 여전히 가장 높은 위험도를 유지하는 것을 밝혀냈다.

임영석 교수는 "간암은 국내 중년 암 사망률 1위 암이다. 매년 1만 2천여 명의 간암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약 8천여 명이 간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환자 대부분이 생산 활동 연령대여서 가정과 사회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간암 원인의 약 70%는 만성 B형간염이고, 만성 B형간염에 대해서는 매우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 약제가 개발돼 있다. 하지만 현재는 치료기준이 엄격하다보니 B형간염 환자 5명 중 1명만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연구결과와 선행연구에서 축적된 근거를 바탕으로 만성 B형간염에 대한 임상진료 가이드라인과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간수치와 관계없이 간경화가 없는 중등도 또는 높은 바이러스 혈증을 가진 만성 B형간염 성인 환자에게 조기에 항바이러스 치료를 적용한다면 향후 15년간 국내에서만 약 4만 3천 명의 간암 발생과 약 3만 7천 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환자중심의료기술 최적화 연구 사업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한국과 대만의 22개 센터에서 수행됐다.

calebca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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