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총통이 나치를 언급하며 유럽과 태평양의 연대를 말했다. 지난 8일 타이베이 영빈관에 마련한 유럽 승전 80주년 기념 티파티에서다. 국내에서는 대형 이슈에 가렸지만 라이칭더(賴清德) 총통의 이날 연설은 의미심장했다.
“80년 전 오늘 나치 대표가 동맹국에 투항하면서 2차 대전 유럽 전장이 끝났다. 동맹국의 정예군이 태평양 전장으로 향하면서 3개월 뒤 태평양 전장도 끝날 수 있었다.”
나치(Nazi)는 ‘국가(National) 사회주의(Socialist) 독일 노동자당’의 약칭이다. 중화권에서는 나추이(納粹)로 음역해 표기한다.
대만이 유럽의 승전을 기념하는 공식행사를 연 것은 처음이다. 라이 총통은 최근 유럽과 태평양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다. “대만과 유럽은 신권위주의집단(新極權集團)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라며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에 필수적인 선거가 해외에서 유입되는 각종 허위정보로 방해받고 우리 사회에서 의도적인 대립이 조성되는 것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면서다.
10년 전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달랐다. 그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7월 7일을 선택했다. “최근 중국에서 항일전쟁이 중국공산당 주도로 이뤄졌다는 보도가 나온다”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항일전쟁은 국민당 장제스(蔣介石)가 이끈 것이 진실”이라고 했다.
라이 총통의 연설 몇 시간 뒤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났다. 푸틴 대통령이 “중국은 3700만의 목숨을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바쳤다”라며 “공산당의 리더십 아래 승리를 성취했다”고 했다.
대만이 반발했다. 중국 업무를 맡는 대륙위원회가 9일 “중국공산당은 전쟁을 기회로 세력을 확장했을 뿐 항전에 실질적 기여가 없었다”라고 했다. 1949년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은 항일전쟁의 주체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같은 날 20여 개국 정상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모여 열병식을 관전했다. 오는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에서도 열병식이 열린다. 80년 전의 연합군 진영은 서구와 중·러로 갈라졌다. 8월 15일 광복 80주년을 맞는 한국은 갈라진 국제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할까. 17일 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차기 대통령의 현명한 연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