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신선의 불사약에서 거리 음식으로...쏸라펀(酸辣粉)

2025-12-04

중국 시장에서, 거리에서 가장 저렴하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쏸라펀이다. 게다가 컵라면처럼 컵 쏸라펀까지 판매되고 있으니 대중적 인기가 상당히 폭 넓은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쏸라펀이라는 중국 국수,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은 거리 음식이고, 또 서민들이 즐겨 먹게 된 과정이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애써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떡볶이와 많이 닮았다.

사족처럼 불필요한 설명일 수도 있겠으나 굳이 덧붙이자면 쏸라펀은 마라탕처럼 맵고 얼얼한 맛에 신 맛까지 더해진 국물에다 국수를 말거나 비벼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이름이 신맛 산(酸) 매울 랄(辣) 가루 분(粉)자를 써서 산랄분, 중국어 발음으로 쏸라펀이다. 이 국수, 어떻게 생겨났을까?

쏸라펀은 출발부터 서민적이다. 지금도 중국이나 대만 홍콩 등지의 시장이나 노점에서 간단하고 편안하게 한 끼 식사나 간식, 야식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그 뿌리 역시 거리 음식에서 비롯됐다.

알려지기로는 사천성 성도(成都)에서 한 노점상이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당면을 식초와 고춧기름, 간장과 다진 고기 등에 섞어 팔면서 호평을 받았다. 그 후 사천을 떠나 호남과 귀주 등 서남 지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금의 쏸라펀으로 발전했다.

처음 태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쏸라펀이 거리 음식에서 시작됐고 서민 음식으로 출발한 것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근본 자체가 형편없는 싸구려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국민 간식 떡볶이의 기원을 조선시대 궁중 떡볶이에서 찾는 것처럼 쏸라펀 역시 따지고 보면 청나라 혹은 그 이전 중국 상류층의 고급 요리를 모체로 본다. 부자들의 음식을 서민층에서 자신들의 형편에 맞게 대중화시킨 것이 쏸라펀이라는 것이다.

쏸라펀에 들어가는 당면 국수 펀(粉)이 그런 예다. 이 국수, 넓적하고 쫄깃해 식감이 특별하지만 어쨌든 국수는 국수인데 왜 국수 면(麵)이 아닌 가루 분(粉)자를 썼을까?

중국의 국수 분류법을 간단하게 구분하면 밀가루 반죽을 길게 뽑은 것이 면(麵), 쌀가루 반죽을 가늘고 길게 늘인 것은 선(線)이다. 반면 분(粉)은 녹두나 고구마 감자 전분으로 만든다. 우리가 당면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국수다. 그러니 밀이나 쌀가루가 아닌 전분으로 만든 국수, 특히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었기에 쏸라면이 아닌 쏸라펀이다.

중국에서 처음 전분 국수가 등장한 것은 대략 300년쯤 전이다. 18세기 초 산동성 연태 등지에서 발달했는데 녹두를 갈아 그 전분으로 국수를 만들었다. 녹두 전분 국수, 즉 당면은 당시 흔한 국수가 아니었고 또 산지도 제한됐기에 고급 식재료로 쓰였다. 바꿔 말해 서민들은 먹기 힘든 국수였다. 이랬던 전분 국수, 당면이 널리 퍼진 것은 고구마가 널리 보급되면서부터다.

18~19세기 하북 하남 산동 등지에 심한 기근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이때 여송국(呂宋國), 필리핀에서 전해져 복건 등지에서만 재배됐던 고구마가 구황작물로 보급되면서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고구마 전분 국수도 이때 만들어졌고 예전 부자들이나 먹던 녹두 당면을 대체했다.

19세기 후반 사천성 성도의 노점상이 쏸라탕에 전분 국수를 넣어 쏸라펀을 만들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쏸라펀의 베이스가 되는 쏸라탕이 대중화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쏸라탕 맛의 기본은 매운 고추와 신맛을 내는 식초다. 그런 만큼 중국에 고추가 전해진 명말청초 이후에 발달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이런 음식이 없었을까?

옛날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증명할 수는 없지만 쏸라탕의 원형은 후추와 식초를 사용해 시고 매운 맛을 내는 후라탕(胡辣湯)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후라탕, 보통 음식이 아니었다. 12세기 송나라 때 등장한 요리로 전설에는 신선이 되려고 도를 닦는 도사들이 먹었던 불사약이 뿌리다. 비법을 전수받은 궁중 요리사가 황제에게 만들어 바친 것에서 비롯됐다. 12세기는 중국에서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후추가 금싸라기만큼이나 비싸고 귀한 향신료였으니 불사약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이후 17세기 초, 고추가 중국에 전해졌다. 고추 역시 후추처럼 몸을 따뜻하게 하고 땀을 배출하며 습한 기운을 없애는 효과가 있으니 값비싼 후추를 대신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후라탕을 대신해 쏸라탕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쏸라탕이 더욱 대중화되면서 급기야는 여기에 고구마 전분 국수를 말아먹는 쏸라펀이 거리의 노점 음식으로 등장하게 됐다.

그런 만큼 쏸라펀은 옛날 상류층에서나 먹었고 값비싸고 맛있으며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맛보려는 서민들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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