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 사이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국가 중 최초로 브릭스(BRICs) 회원국이 됐다. 이는 2025년 이후 외교·경제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결정이란 평가다. 특히,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를 견제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의 브릭스 가입은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당한 파급 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1월 브릭스 가입한 인도네시아
다자간 경제협력에 적극 행보
경제 안보 이슈로 접근할 필요
프라보워 대통령은 2024년 10월 취임 직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외무부 장관을 파견했고, 지난달 인도네시아는 브릭스의 10번째 정회원국으로 승인됐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왜 서둘러 브릭스에 가입했을까. 여기에는 3가지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경제 파트너 입지 약해지는 한국
첫째, 조코 위도도(조코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이다. 군 장성 출신이자 전직 국방부 장관인 그는 조코위 전 대통령과 다른 외교 스타일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실제로 그는 취임 후 100일 동안 중국과 미국·일본·인도 등 9개국을 방문했고, 취임 전부터 따지면 20여개국을 찾았다.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은 이를 ‘지위 추구 행동(Status-seeking behavior)’으로 분석했다. 조코위가 실용적이고 비즈니스 중심의 외교를 펼쳤다면, 프라보워는 국제적 지위 향상에 자신의 역량이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받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둘째,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다자간 경제 협력의 필요성이 커졌다. 조코위 전 대통령은 2023년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가입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프라보워 대통령이 직면한 현실은 다르다. 인도네시아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며, 미국·일본·싱가포르·인도가 뒤를 잇는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 장벽이 강화되면서 인도네시아는 광물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인도 및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과 협력을 확대하며,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고려하는 등 보다 실용적인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셋째, 레버리지 극대화 전략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군도국가로 인구는 2억8000만 명에 이른다. 한국보다 19배나 큰 영토에 2차전지의 핵심 광물인 니켈부터 구리와 보크사이트, 주석, 희토류 등 자원이 풍부하다. 남중국해 문제와 전략광물자원 공급망에서 인도네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다. 하지만 미국과 핵심광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를 견제하며 “달러 대체를 시도하는 국가에는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인도네시아가 브릭스 가입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프라보워는 ‘1000명의 친구도 부족하고, 한 명의 적도 많다’는 속담으로 외교 정책의 기조를 설명했다. 모든 국가와 평화로운 관계를 강조하고 있으나 그의 외교 행보에서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자국산 부품 사용 제도에 맞춰 삼성전자는 현지에서 스마트폰을 생산하고 있으며, 포스코·LG에너지솔루션·현대자동차·롯데케미칼 등 230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다. 국내 금융회사도 현지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중국과 일본을 선택했으며, 한국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하면, 인도네시아의 경제 파트너가 다변화될수록 한국의 입지는 약화할 위험이 있다.
무역기술 장벽 해소 협력 가능
이런 상황 속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경제 안보 이슈를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특히, 글로벌 통상 및 기술 규제 강화에 대한 공동 대응은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최근 무역기술장벽(TBT)과 전략물자 통제, 기술 규제가 강화되면서 무역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TBT는 표준, 규격, 인증, 시험 절차 등 각국의 기술 요건이 상이해 무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이다. 특히, 첨단 기술이 경제 안보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면서 기술 규제와 수출 통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기존에는 군사적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품만 전략물자로 지정했지만, 최근에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 분야까지 포함되는 추세다. 이는 단순한 기술 규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기업의 수출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에 대한 반도체 및 관련 장비 수출 통제가 있다.
이러한 규제 장벽이 강화되면서 기업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은 수출 강국으로서 무역 규제와 기술 통제에 대비하고 있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은 이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 미국 역시 아세안 국가들이 무역 관리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이 무역기술장벽 해소, 수출 관리 및 기술 규제 지원을 체계화한다면, 인도네시아 기업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세안 내 역내 공급망을 강화하고,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유리한 투자 및 수출 환경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KF-21 분담금 문제로 소원해진 한-인도네시아 관계를 2025년 경제안보 및 통상 이슈 협력으로 풀어가는 것은 어떨까.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