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학술원(이하 학술원)은 학술 발전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최고의 학술 기관이다. 학술원 회원이 별세하는 경우 그 홈페이지의 ‘회원 동정’ 코너에는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글이 게시된다. 대개는 타계 당일 혹은 그 이튿날 공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2023년 8월 원로 경제학자 윤기중(1931∼2023) 회원의 부고(訃告)를 접한 학술원의 조치는 여느 회원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해 8월15일 숨을 거둔 윤기중 회원의 발인 날짜는 이틀 뒤인 8월17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학술원은 발인 하루 뒤인 8월18일에야 홈페이지에 공지문을 띄웠다. 회원의 부음을 알리는 게시물에는 통상 고인의 학력, 경력, 주요 서훈(敍勳) 및 저서 그리고 유족 명단까지 정리된 문서가 첨부되기 마련이다. 각 언론사 기자들이 부고 기사를 작성할 때 참고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 윤기중 회원의 경우 해당 문서에서 유족 명단이 빠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고인이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부친이었기 때문이다.
고(故) 윤기중 학술원 회원은 연세대 상경대 교수 및 학장을 지냈고 정년퇴임 이후 타계할 때까지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있었다. 그래서인지 윤 전 대통령은 젊은 시절 부친의 직장이기도 한 연세대 캠퍼스를 자주 드나들며 정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정부 시절 대통령실에서 일한 성태윤 전 정책실장은 고인의 제자들 중 한 명이다. 그는 “해외 유학과 관련해 장학금을 받게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처럼 기뻐하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다”라는 말로 고인을 추모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이 눈길을 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고 윤기중 학술원 회원의 묘역 사진과 나란히 적은 글에서 이 교수는 “8월15일이면 돌아가신 지 2주기가 된다”며 “아들도 며느리도 올 수 없는 묘소에 가서 참배했다”고 밝혔다. 한때 막역한 친구 사이였던 윤 전 대통령을 대신해 고인의 2주기 기일(忌日)을 챙긴 셈이다.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며느리(김건희씨)가 영부인 지위에 올랐을 때 고인은 얼마나 뿌듯했을까. 새삼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塞翁之馬)라는 말이 떠오른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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