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들은 ‘CF송’이 계속 흥얼거려지는 이유는

2024-09-15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웹툰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만 소비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없던가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읽을거리가 더해진다면 훨씬 더 재밌을 지 모릅니다. ‘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는 이야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인사이드 아웃>과 초두효과, 최신효과, 각인효과

<인사이드아웃2>가 전세계에서 10억달러를 벌어들이며 <겨울왕국2>를 넘어선 애니메이션영화 역대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인사이드아웃2>는 국내에서도 90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역대 디즈니픽사 영화 중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2015년 <인사이드아웃>이 개봉됐을 때 제작사 조차도 이같은 흥행을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심리학적 요소를 담다보니 애니메이션 치고는 주제가 추상적이고 복잡했다. 단순하고 가벼운 플롯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과거 흥행작들의 흥행공식과는 차이가 컸다. 하지만 독창적인 스토리와 감동적인 메시지, 깜찍한 캐릭터들은 예상을 깨고 관객과 비평가들을 사로 잡는데 성공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다섯감정...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피트 닥터 감독의 <인사이드 아웃>은 마음 속에 이같은 다섯 감정이 존재한다고 상상한다. 감정들은 출생과 함께 생겨나는데 가장 나타나는 감정이 기쁨이다. 엄마아빠가 ‘까꿍’ 할때 아기가 방긋 웃는 그 감정이다. 이어 슬픔이 나타나고, 까칠, 소심, 버럭이도 나타난다. 그래서 전선앞에서는 조심조심 건너가고, 맛없는 브로콜리를 주면 심술궂은 표정을 짓다 울어버린다. 다섯감정들은 ‘감정콘트롤 본부’에서 사람의 감정을 조정한다.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은 11세 소녀 라일리다. 미네소타에서 어린 시절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라일리는,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가면서 큰 변화를 맞는다. 샌프란시스코는 더이상 빙판도, 마당 너른 집도, 오래사귄 친구들도 없다. 낯선 환경에 맞딱드린 라일리는 감정이 요동친다. 기쁨이 감정콘트롤본부에서 이탈하면서 라일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감정콘트롤본부에 남은 감정은 버럭, 까칠, 소심. 라일리는 전예없이 까칠해지고 화를 잘내면서 소심하게 행동한다. 그러면서 그간 라일리의 인격을 구성했던 우정섬, 가족섬, 정직섬, 하키섬 등이 하나씩 무너진다. 라일리는 마침내 가출을 결심한다. 행복했던 미네소타로 돌아가면 행복했던 생활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인사이드아웃>에서는 다섯감정들이 라일리가 겪은 기억을 자신의 특성에 맞게 저장한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Super important) 기억인 핵심기억은 장기기억보관소로 보내져 영원히 저장된다. 그러면 라일리는 그 기억을 영원히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기억할 수 없다. 잊지 못할 진짜 중요한 기억들만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최초의 경험한 기억들도 잘 잊기 힘들다. 첫사랑, 첫출근, 첫여행 등이다.

라일리도 마찬가지다. 라일리는 어릴 적 아이스하키에서 첫골을 넣었던 순간을 ‘어메이징했다’고 기억한다. 라일리가 처음 겪었던 그 놀랍고도 행복한 순간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이처럼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알게된 정보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현상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는 A,B 두사람을 소개한 뒤 실험참가자들이 이들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살펴봤다. A에 대해서는 “똑똑하고 근면하다. 하지만 충동적이며 비판적이고 고집이 세고, 질투심이 강하다”라고 소개했다. B에 대해서 “질투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비판적이고, 충동적이다. 하지만 근면하고 똑똑하다”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A,B 중 누구에게 더 매력을 느끼냐”고 질문했다. 대다수의 사람이 A를 선택했다. 눈치챘겠지만 두 질문은 똑같은 단어를 썼고, 똑같은 길이로 기술했다. 단지 다른 건 단어 나열 순서만 거꾸로 했을 뿐이었다. 처음 들어온 정보가 ‘똑똑하고 근면하다’였는지 ‘질투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였는지에 따라 A와 B에 대한 인상이 달라진 것이다.

초두효과는 우리 뇌가 가진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 뇌는 처음 들어오는 정보는 낯설기 때문에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또 처음에 들어온 정보가 일단 입력되면 그 뒤에 들어오는 정보는 이에 맞춰서 해석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때문에 뇌는 처음 들어온 정보를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초두효과는 첫인상의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준다. 첫만남에서 각인된 인상은 어떤 인상보다 오래남을 수 있다. 면접에서 면접관을 사로잡느냐 마느냐는 초반 1~2개 질문에서 결정된다. 영업 프리젠테이션도 첫 5분을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신입채용 면접시 첫인상 판단 소요시간은 평균 3.7분이었고, 85.5%는 첫인상이 면접 끝까지 유지된다고 답했으며 63.4%는 첫인상이 스펙보다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우리 기억은 항상 오래전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통상 시간이 지나면 앞선 기억은 흐릿해 진다. 가장 잘 기억되는 것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다. 예컨대 영어단어를 외울 때 처음 외운 단어보다 가장 마지막에 외운 단어가 더 기억난다. 이처럼 뇌는 가장 최근에 얻은 정보나 지식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최신효과Recency Effect’)라고 한다. 최신효과는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가 통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라일리는 유아 때 상상속의 친구였던 빙봉을 점차 기억하지 못한다. 빙봉은 라일리의 기억속에서 지워지는 것을 아주 슬퍼하는데 이는 최신효과의 영향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는 기억처리반이 장기기억저장소에 저장돼 있는 오래된 기억을 쓰레기장으로 버리는 것으로 최신효과를 설명한다. 이렇게 쓰레기장에 버린 오래된 기억은 영원히 머릿속에서 잊혀진다는 것이다. 레일리가 4년간 배웠던 피아노 레슨 기억에 대해 기억처리반장은 “젓가락 행진곡만 빼곤 다지워”라고 명령한다. 레일리가 어릴 적 갖고 놀았던 장난감 공주의 이름에 대해서도 “지워”라고 명령한다. 빙봉은 쓰레기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라일리의 기억속에서 완진히 지워진다.

독일 심리학자인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는 인간은 기억 회상 단계에서 처음과 마지막 항목은 잘 기억하지만 중간에 제시된 항목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이를 ‘서열위치 효과(Serial Position Effect)’라고 명명했다. 이를 그래프로 그리면 U자 형태가 된다.

기억은 입력된 순서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일까. 라일리는 어릴 적 흥얼댔던 트리플덴트껌 CF송을 지금도 흥얼댄다. 기억처리반장은 “가끔 우리가 이 기억을 본부에 올려보내면 라일리 머릿속에 이노래가 종일 맴돈다”고 말한다. 기쁨이 맞장구를 친다. “그 노랜 우리도 알아 입에 쫙쫙 붙지”

특정 시기에 일어나는 학습효과가 평생동안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데 이를 ‘각인효과’라고 한다. 알에서 부화된 새끼 거위가 어미 곁에서 크면 어미를 따르지만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람을 어미로 오인하며 따른다. 시간이 흘러 성숙한 거위가 돼도 사람을 떠나지 않으며 심지어 사람과 짝짓기를 하러 든다. 각인효과의 학습효과는 특정 시기에 일어나는데 이를 임계기간(critical period)이라고 한다.

거위의 경우 갓 태어났을 때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생각한다. 시계를 보여주면 시계를, 청소기를 보여주면 청소기를 어미로 알고 따른다고 한다. 거위는 부화해서 2일까지, 오리는 17시간까지 ‘각인’이 이뤄진다. 오스트리아의 로렌츠는 이를 관찰해 노벨상을 받았다. 각인효과는 새에게 주로 많이 나타나지만 포유류와 어류, 곤충에게서도 나타난다.

모리 아키오의 ‘게임 뇌의 공포’를 보면 10세를 전후해 뇌의 뉴런 간 연락이 활발해 새로운 신경회로가 많이 만들어지고, 그 내용은 기억장치인 해마에 저장된다. 해마에 저장된 정보가 각인효과를 일으킨다. 그러니까 유아때 많은 양의 영상과 소리 정보를 접하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는 애기다. 어릴 적 들었던 음악을 성인이 된 이후에도 흥얼댈 수 있는 것은 이때문이다. 각인효과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격언을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보자. <인사이드아웃>에서 라일리의 감정콘트롤본부를 주도하는 감정은 ‘기쁨’이다. 하지만 엄마의 감정콘트롤본부에는 ‘슬픔’이 가운데 앉아있다. 아빠는 ‘버럭’이가 본부의 가운데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기쁨을 잃는다는 것일까? 어쩌면 <인사이드아웃2>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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