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 최악의 팀이 ‘감독 논술시험’ 본 이유

2025-03-12

화이트삭스, 지난해 121패 후

야구 철학·소통 능력 등 평가

한국 이끌어갈 새 감독에게도

‘팀 문화 구축’ 해법 들어봐야

메이저리그 야구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최애팀이다. 화이트삭스는 이만수 전 감독이 코치로 뛰었던 2005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지난해 화이트삭스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악의 팀이었다. 시즌 개막부터 약체로 분류됐지만 해도해도 너무했다. 5월에 한 차례 14연패를 하더니, 7월부터 다시 시작된 연패는 무려 21연패까지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패는 뉴욕 메츠가 1962년 기록한 120패였고, 신기록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구단 공식 SNS는 실성했다. 하도 많이 지니까 ‘졌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상대 팀이 우리보다 점수를 더 많이 냈다”고 썼고, “우리는 상대보다 점수를 덜 얻었다”고 썼다. 120패가 다가왔을 때는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는지 “MLB 앱에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9월23일, 샌디에이고에 패하며 드디어 시즌 120패를 완성했다. 그런데도 아직 6경기나 더 남았다. 에인절스와의 홈 3연전에서 3연승을 거두자, 팬들이 박수가 아니라 야유를 보냈다. 역사적인 신기록 121패째를 홈에서 보지 못했다는 비아냥이었다. 디트로이트 원정에서 1패를 더하면서 결국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시즌 최종 성적은 41승121패, 승률 0.253.

감독이 바뀌는 건 당연했다. 페드로 그리폴 감독은 시즌 중 잘렸고, 대행이었던 그래디 사이즈모어 감독도 자리를 이어받지는 못했다. 화이트삭스는 ‘최악의 팀’을 수렁에서 끌어올리기 위한 적임자를 찾아 나섰다. 누가 봐도 어려운, 누가 봐도 썩 하고 싶지 않은 화이트삭스의 2025시즌 신임 감독은 윌 베너블이다.

그저 그런 선수였다. 9시즌을 뛰었지만 주전으로 뛴 건 몇 시즌 안 된다. 통산 타율은 겨우 2할4푼9리다. 은퇴 뒤 코치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2020시즌부터 감독 자리가 빌 때마다 후보로 거론됐다. 2023년 텍사스 브루스 보치 감독의 ‘부감독’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베너블에게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

아버지 맥스 베너블은 메이저리그에서 12년을 뛰었고 커리어 막판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뛰었다. 윌은 아버지의 팀을 따라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고 일본에서 살 때는 일본 친구들과 야구를 했다. 베너블의 ‘소통 능력’과 ‘친화력’은 거기서 비롯됐다(맥스 베너블은 2013년 SK 와이번스 타격코치였다. 그때 감독이 이만수 감독이다).

미국의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 베너블은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했다. 원래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수학이 너무 어려워 포기했고, 인류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베너블은 “솔직히 말하면 시험 보는 것보다 논문 쓰는 걸 더 좋아했다”고 말했다. 베너블의 졸업 논문 제목은 ‘게임과 커뮤니티, 미국과 일본의 야구에 대한 인류학적 관점’이었다. 이후 메이저리거가 됐고, 메이저리그 감독이 됐다.

ML 사상 최악의 팀이 된 화이트삭스는 새 감독을 뽑아야 했다. 40명의 후보군을 추렸다. 그리고 결정적 시험을 봤다. ‘논술시험’이었다. 야구라는 종목에 대한 철학, 경기 운영 스타일과 팀 문화 구축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있었고, ‘이에 대해 논술하시오’가 필수 제출 서류였다. 구단 운영진은 “정답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후보들이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야구의 특정 분야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말했다. ‘인류학 전공’ 베너블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메이저리그 감독으로서 어떻게 성공할 계획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세분화해서 설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사회도 지금 연패 중이다. 감독은 직무정지가 됐고, 감독 대행이 팀을 이끌고 있지만 경기 운영이 쉽지 않다. 곧 새 감독을 뽑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화이트삭스처럼 논술시험은 어떨까. ‘저 감독은 안 돼요’ ‘저 감독은 나빠요’라고 떠들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관점과 철학, 국정 운영 스타일과 어쩌면 제일 중요한 ‘팀 문화 구축’에 대한 답을 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내일은 보다 나은 경기를 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야구도 그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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