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80만 명의 부탄은 세계 최빈국에 속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부탄은 절대 왕정국가지만 국왕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주창했고 국민들도 민주화를 받아들이면서 세계사적으로 특이하게 혁명과 갈등 없이 민주국가를 실현한 나라가 되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총을 든 스님’은 부탄이라는 작은 왕국에서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2006년의 부탄 왕국,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보급된다. 국왕은 자진해서 모든 권력을 내려놓겠다고 말하고 부탄의 민주화를 선언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당국은 모의 선거를 마련하고 선거 관리 공무원까지 급파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 라디오를 통해 선거 소식을 듣게 된 산골마을 우라의 라마승(켈랑 최제이 분)은 제자 타시(탄딘 왕축 분)에게 총 두 자루를 구해 오라고 말한다. 타시는 총을 수소문하던 과정에서 골동품상과 가이드 벤지(탄딘 손남 분)을 만나게 되는데 라마승은 왜 총을 구해오라고 했을까. 과연 부탄의 첫 민주 선거는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인가.
영화는 부탄의 개방과 현대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부탄은 대중의 요구나 혁명없이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됐으며 국왕이 자발적으로 왕의 권위를 포기한 국가다. 전작 ‘교실 안의 야크’에 이어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총을 든 스님’은 한 번도 선거를 치러본 적 없는 부탄 국민들의 첫 모의 선거에서 논란이 된 전통과 개발이라는 대립되는 소재를 유머와 성찰로 코믹하게 그려낸 블랙코미디다. 감독은 극 중 배경이 된 우라마을의 현지 주민들을 캐스팅해 부탄의 개방과 현대화 상황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정착 과정을 말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열 등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영화에서 선거관리 공무원은 사람들에게 각 정당의 정견 차이를 색깔로 알려준다. 빨간색은 산업화, 파란색은 평등과 정의, 노란색은 과거의 보존을 의미한다며 편을 가르고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 그러나 선거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부탄 국민들에게 선거는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 영화는 갈등과 분열의 민주주의 문제점을 조명하면서 동시에 부탄 국민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디어의 역할도 상기시킨다. 영화에서 선거의 중요성과 투표 과정을 설명하는 선거 국장에게 노인들은 “인도의 뉴스를 보니 투표로 뽑힌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곤 의자를 집어 던지는 일”이라며 민주주의를 비판한다. 또한 큰 스님이 총을 구한 이유도 총이 미디어에서 평화를 방해하는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SNS와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 뉴스가 실시간 전파되면서 선거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사회주의나 전체주의 국가들은 부정적인 미디어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영화는 민주주의 체제 정착에 있어 미디어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반대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주의나 전체주의와 달리 반대가 허용되는 민주주의 체제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또한 민주화로 극심한 갈등과 분열 속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점 때문에 세계에서 전체주의 경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영화 ‘총을 든 스님’은 부탄의 민주화를 통해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상기시켜준다. 더욱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애써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