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이 삼성전자(005930)를 상대로 청소기 광고를 멈추라는 가처분 신청을 독일에서 제기했다가 한 달 만에 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다이슨은 삼성전자와 LG전자(066570) 등 한국 가전업체들이 무선청소기 시장에 진입하자 전 세계에서 여러 소송전을 벌였는데 비슷한 전략을 다시 시도한 것이다. 업계에선 경쟁 기업들의 잇따른 제품 출시로 다이슨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자 법적분쟁을 통한 견제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다이슨은 5월 초 삼성전자 독일 법인에 무선청소기 신제품인 비스포크 AI 제트 400와트(W) 제품에 대해 ‘최대 흡입력 400W’라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중지해달라는 요구 서신을 발송하고 같은 달 프랑크푸르트 법원에 광고중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했다.
해당 제품은 삼성전자가 3월 출시한 무선청소기로 ‘체인 코어’라는 특허 기술로 핵심 부품 구조를 효율화한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전작 대비 흡입력을 최대 29% 향상시켰다. 삼성전자는 해당 제품을 광고할 때 ‘세계 최고 400W 흡입력을 구현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다이슨은 이러한 표현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독일 측정 전문기관인 SLG에 흡입력 수치를 검증해 5월 중순 다이슨에 반박 서면을 보냈다. 법원에도 흡입력 수치 검증 결과에 더해 “다이슨의 흡입력 측정방식에는 오류가 있다”는 취지의 방어 서면을 제출했다. 법원은 삼성전자의 주장에 대한 양측 입장을 6월 초까지 제출하라고 했지만 다이슨은 이를 제출하지 않다가 돌연 가처분 신청을 취하했다.

다이슨은 과거에도 국내 가전업체를 향해 비슷한 방식으로 법적 분쟁을 벌여왔다. 2014년에는 삼성전자 청소기 ‘모션싱크’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영국 고등특허법원에 특허침해 소송을 걸고 독일에선 광고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삼성전자는 1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국내 법원에 제기하며 맞불을 놨고 결국 다이슨은 법원 조정에 따라 “삼성전자 청소기가 다이슨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독일에서 진행된 소송의 경우 항소심까지 거쳐 2018년 다이슨이 최종 패소했다.
LG전자와도 무선청소기 제품을 놓고 세 번의 송사를 벌였다. 2015년에는 LG전자가 다이슨의 광고를 문제 삼아 호주연방법원에 소송을 냈고, 이듬해에는 다이슨이 양사 무선청소기 비교 시연을 한 것을 두고 LG전자가 검찰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2018년에는 다이슨이 LG전자의 A9 무선청소기의 일부 표시·광고 문구가 제품 성능을 허위, 과장 설명해서 소비자를 오인하게 할 수 있다면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세가지 사례 모두 다이슨이 광고 중단을 하거나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다이슨 측 패배로 끝났다.
업계에서는 국내 가전업체가 무선청소기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하자 위기감을 느낀 다이슨이 시장 방어를 위해 송사를 시도한 것으로 분석한다. 소송을 통해 자사 제품의 우위를 강조하고 경쟁사 마케팅을 견제하는 방식이다. 앞서 다이슨은 최근 출시한 무선 청소기 ‘DS60 피스톤 애니멀’ 제품에 대해 ‘다이슨 제품 중 가장 강력한 흡입력(315AW)’이라고 적극 광고하고 있다.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을 개척하며 한때 70~80%에 달하는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했던 다이슨은 2020년대 들어 삼성·LG에 밀려 점유율이 10%대까지 추락해 회복의 발판이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 규모가 200만 대까지 확대됐지만 다이슨은 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년 만에 다시 소송전을 시도한 건 위기감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