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청소년 참여기구인 청소년 특별회의 위원 절반 이상이 “우리 삶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부끄러운 정부를 거부한다”며 사퇴했다. 특별회의 위원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문제 제기에 나서려 하자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에서 “현직에선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청소년들이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관련 정책 제안을 하자 진흥원이 “정치적 논란이 된다”며 특별회의 위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별회의 위원 86명 중 48명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를 기계적으로 제약하며 정부의 통제 빌미가 된 운영규정상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차후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임을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무참히 유린한 내란 수괴가 이끄는 현 정부와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어 사직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위원들은 비상계엄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려 했으나 “(진흥원 측에서) 이해는 하는데 조직을 위해 ‘위원직을 사직하고 나가서 의견을 내는 것이 좋지 않겠나’, ‘현직에선 비상계엄에 관한 의견 표명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위원들은 “현 정부 들어 청소년 예산을 대거 삭감하고 여가부를 옥죄면서 분노와 답답함이 쌓여왔다”고 덧붙였다.
특별회의는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운영위원회와 함께 법에 따라 운영되는 청소년 참여기구다. 여가부 산하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운영하며, 청소년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별회의 소속 위원들은 청소년 정책 과제를 발굴해 정부부처에 제안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별회의를 포함해 여가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참여기구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활동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엔 청소년 활동 예산 38억원, 청소년 정책 참여 지원예산 26억원 등이 대거 삭감되면서 지방정부 중심의 청소년참여위는 상당수 지자체에서 사실상 무력화됐다. 특별회의는 지난해까지 500명 규모로 운영되다 올해 100명 수준으로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특별회의 위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국회는 전액 삭감된 청소년 정책참여 예산을 비롯해 청소년 삶과 연관된 예산을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며 “장관 임명을 비롯해 청소년정책 주무부처인 여가부 기능을 정상화하라”고 했다.
특별회의 내부에선 여가부와 진흥원의 운영 방식을 둘러싼 불만도 쌓여있다. 202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김경훈 특별회의 부의장은 15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활동 영역을 좁히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활동을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통제해왔다”며 “청소년들이 제안한 정책 수용률은 10% 정도에 그치는데 정부는 제안 취지와 180도 다른 기존의 유사한 정책을 끼워넣어 부처의 정책 수용률이 평균 90% 넘는다고 홍보한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AI 교과서 관련 정책을 교육부에 제안하려 했던 과정을 예로 들었다. 김 부의장은 “AI 교과서를 두고 효과성 검증이 부족하고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반대 의견이 특별회의 위원들 사이에 많았는데 정치적 논란이 된다는 이유로 (진흥원 측에서) 정책 제안을 하지 않는 쪽으로 하자고 했다”며 “교과서는 특히 청소년들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정치적인 쟁점이라는 이유로 언급을 꺼려했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청소년 관련 예산은 성인들의 생활 세계 밖의 일이어서 그런지 쉽게 삭감되곤 한다”며 “청소년들이 특별회의와 같은 참여기구를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지만 여러 청소년 기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진흥원이 특별회의 위원들에게 의견 표명 자제를 요구했다는 주장에 대해 여가부는 “진흥원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면서 “의견 표명 자제는 여가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정책 제안이 각 정부 부처가 하는 업무와 맞아떨어져야 해 조율했던 측면이 있다”며 “부분 수용까지 포함하다보니 정책 수용률이 90% 넘게 나온 것”이라고 했다. 다만 “청소년 정책 전반의 예산이 줄었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활동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