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지사 권도인 선생(1888∼1962년)은 만 17세 때인 1905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67센트의 일당을 받고 일했다. 낮은 임금에서 벗어나려고 호놀룰루 시내로 나가 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훗날 사업가로 변신한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사업으로 일군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후원하고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활동하며 조국 독립에 기여했다. 권 지사는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아 2004년 아내인 이희경 애국지사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을 보면 권 지사의 장례식 추도사에는 ‘발명에 특재를 가져서 미국 정부의 특허를 얻어 독점 판매권을 소유했던 상품이 여러 가지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동안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권 지사의 발명가로서의 삶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재조명됐다.
특허청은 올해 광복 80주년과 발명의 날 60주년을 맞아 진행한 ‘주요국 재외 한국인 발명, 특허 등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권 지사가 미국에서 처음 특허를 출원한 ‘한국인 1호 특허 출원자’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권 지사는 1920년 9월14일 미 특허당국에 ‘재봉틀 부속장치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 권 지사는 이 특허를 포함해 미국에서 모두 5건의 특허를 출원해 등록받았다. 1939년 출원한 ‘대나무 커튼’ 특허는 그가 사업을 일군 밑거림이자 조국 독립의 밑거름이 됐다. 특허를 기반으로 미주 지역에서 가구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둔 권 지사는 1937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운동을 위한 각종 의연금 명목으로 당시 8210달러를 출연한 것으로 독립운동인명사전에 기록돼 있다.

특허청은 이번 연구를 토대로 이날 하와이에 거주하는 권 지사의 외손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열었다. 그의 묘에는 ‘제1호 미국 특허출원 한국인’임을 알리는 비문판도 설치됐다.
특허청은 이날 정부대전청사 발명인의 전당에 ‘독립과 발명’을 주제로 독립유공 발명가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기획전시실도 마련했다. 권 지사와 함께 미국에서 특허를 등록한 발명가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강영승 애국지사(1988∼1987년)와 일제강점기 한국인 1호 특허권자로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한 정인호 애국지사(1869∼1945년) 등 모두 5명의 독립유공 발명가들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5명의 독립유공 발명가에는 재미 독립운동단체인 한국통신부 서기로 활동했던 박영로 선생(생몰연도 미상)도 포함돼 있다. 그가 1920년 권 지사보다 이틀 늦게 미국에서 출원한 ‘낚싯대에 관한 특허’는 권 지사가 출원한 ‘재봉틀 부속장치에 관한 특허’ 보다 4개월 정도 먼저 특허 등록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