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치를 담습니다.
#궁궁통1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지
사흘 만에
예수는
부활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은
이렇게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부활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있습니다.
어떤
논쟁이냐고요?
무덤에 묻혔다가
다시 부활할 때
우리의 몸은
어떤 상태일까.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우리가 살았을 때
그 몸 그대로
부활할 때
되살아난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덤에 묻혔을 때
육신은
이미 다 썩어버린다.
그러니
부활할 때는
우리의 영혼이
부활하는 거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누구의 주장에
고개가
더 끄덕여지십니까.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도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던
물음입니다.
저는
이 물음을
고(故) 정진석 추기경께
던진 적이 있습니다.
정 추기경은
굳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답을 했습니다.
#궁궁통2
부활절을
며칠 앞둔
날이었습니다.
서울 명동의
추기경 집무실에서
저는
정진석 추기경과
마주 앉았습니다.

먼저
부활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최대 명절을
부활절로 꼽습니다.
왜
성탄절보다 부활절이
더 큽니까?”
일반 사람들에게는
연말연시 분위기와 함께
성탄절이
부활절보다
더 크게 느껴지잖아요.
정 추기경은
시작과 끝으로
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 세상에
오시는 시작이
성탄입니다.
그리고
오신 사명을
완성하신 것이
부활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의 의미가
더 깊은 겁니다.”
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며
던진
말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빵과 포도주를
건네며
이 빵은 나의 살,
이 포도주는 나의 피라고
하신 겁니까?”
정 추기경은
살짝 웃으며
“통속적인 표현을
좀 쓸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입을 맞춥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키스가 더 격렬합니다.
상대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어서
추기경은
예를 하나 더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나 주면
어떻게 되나요.
오래 못 들고 있습니다.
곧 입으로
가져가니까요.
사과를
손에 들고 있는 건
물리적 소유입니다.
사과를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화학적 소유가 됩니다.
물리적 소유는
분리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먹어서 내 살이 되면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이말 끝에
정 추기경은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