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차별적 고객가치', 조원태 '아시아나 인수로 새 도약
주요 기업 총수 신년사 발표 후 1년간 경영활동 살펴보니
주요 기업들이 리더의 야심찬 신년사와 함께 한 해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미국‧중국 대립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연말 한국을 휩쓴 계엄‧탄핵 정국까지 여러 대외 악재들이 있었지만 경영자들은 신년사에서 제시한 화두를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기업을 이끌어왔다.
최태원 SK그룹은 올해 1월 1일 이메일 신년사를 통해 “느슨해진 거문고는 줄을 풀어내어 다시 팽팽하게 고쳐 매야 바른 음(正音)을 낼 수 있다”며 “모두가 ‘해현경장(解弦更張)’의 자세로 우리의 경영시스템을 점검하고 다듬어 나가자”고 독려했다.
이전까지 SK그룹은 그룹 컨트롤타워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지주사 SK㈜, 중간지주사 SK이노베이션 및 SK스퀘어, 그리고 각 계열사별로 신사업 발굴 및 추진 역할이 분산되며 방만 투자에 따른 폐해가 지적돼 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투자기능이 분산되며 중복투자나 비효율적인 투자 집행으로 미래 먹거리 발굴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평가와 함께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투자 기능과 조직을 SK㈜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사촌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배치해 그룹 전반적인 경영시스템 재정비를 맡겼다. 최 의장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그룹 계열사 CEO들을 소집해 그룹 내 각 사업을 점검 및 최적화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등 ‘느슨해진 거문고 줄 당기기’에 나섰다.
급기야는 에너지‧화학 중간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과 탄탄한 캐시카우를 갖춘 SK E&S를 합병하면서 자산 100조원, 매출 88조원 규모의 거대 에너지 기업을 탄생시켰다.
이를 통해 그룹의 미래 핵심 사업인 배터리를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만성 적자에 투자 수요가 많은 SK온에 안정적으로 자금을 수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 등 3사 합병도 이뤄졌다.
SK그룹의 다음 스텝은 인공지능(AI) 대확장 시대 대응이 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AI 시장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지난달 초에는 ‘SK AI 서밋(SUMMIT) 2024’를 열고 직접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SK AI 서밋에 앞서 열린 ‘2024 CEO세미나’에서는 계열사 CEO들에게 AI 대확장 시대가 임박했음을 알리며 운영개선(O/I) 완성을 서둘 것을 주문했다.
2025년 새해를 맞아 최 회장이 던질 화두 역시 계열사별로 혁신에 박차를 가하며 AI 시장에 대응하도록 독려하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 1월 3일 신년회에서 던진 화두는 ‘한결같고 끊임없는 변화’와 ‘지속 성장’이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체질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도 전했다.
이미 세계 3위 자동차 회사의 자리에 오르고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해 온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부정적 경영환경에 직면했음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SUV와 제네시스 차종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중심의 판매믹스 개선은 계속해서 이뤄졌고, 전기차 캐즘은 하이브리드차 경쟁력으로 돌파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도 판매와 매출, 영업이익에서 또 다시 역대 최고를 경신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12일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진행된 타운홀미팅에서 올해 현대차그룹이 이뤄낸 성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이루어 내고 있는 혁신과 불가능한 도전들을 돌파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새해 더 큰 도전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의 여정은 지금까지도 훌륭했지만, 진정한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내년에는 더 많은 도전 과제가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기대를 뛰어 넘을 수 있다. 여러분과 같은 인재들이 있고 ‘인류를 향한 진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독려했다.
매년 주요 대기업 총수 중 가장 먼저 신년사를 내놓는 구광모 LG 회장은 작년 이맘때에도 임직원들에게 보낸 디지털 영상 이메일을 통해 ‘차별적 고객가치’를 주문했다. LG는 구성원들이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수 있도록 2022년도 신년사부터 연초가 아닌 연말에 신년사를 전하고 있다.
고객가치는 구 회장이 취임 이후 줄곧 내세워 왔던 화두이기도 하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최고의 고객경험 혁신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차별적 고객가치에 대한 몰입’이 필요하다”며 고객가치 경영철학의 일관성을 보여줬다.
올해 LG그룹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중국의 거센 추격에도 불구, 주요 가전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해 왔으며, 특히 최신 기술을 집약한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주도해 왔다.
LG전자 고객가치 전략의 중요한 축인 구독 서비스는 시장 안착을 넘어 시장 점유율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LG전자의 올 1~3분기 가전 구독 사업 누적 매출은 1조2386억원에 달했다.
LG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캐즘에도 불구, 배터리 제조사 중에서는 가장 양호한 실적으로 업계 리딩 기업의 면모를 과시했다. 단지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 요청에 최적화된 제품 솔루션 개발로 고객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결과다. CTP(Cell to Pack) 적용 리튬인산철(LFP) 제품을 앞세워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 침체 상황을 보완해줄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도 적극 대응하면서 실적을 방어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구광모 회장은 2025년 신년사도 일찌감치 발표했다. 구 회장은 지난 19일 디지털 영상 이메일 신년사를 통해 “새 영역에 도전하고 전에 없던 가치를 만든 순간들이 쌓여 오늘의 LG가 있다. 앞으로도 이런 도전과 변화 정신으로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내놓자”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새해 신년사의 핵심 역시 ‘고객’이다. ‘도전’과 ‘변화’를 강조하면서도 고객을 중심에 뒀다. 구 회장은 “도전과 변화의 DNA로 미래의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드릴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가 다져온 고객을 향한 마음과 혁신의 기반 위에 LG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세우자”고 강조했다.
연초 신년사에서 공언한 바를 연말에 가장 가시적인 성과로 이끌어낸 총수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조 회장은 올해 1월 2일 사내 인트라넷에 등재한 신년사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들이 마음을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올해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이 마무리될 것이고, 통합 항공사의 출범은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거대한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게 되면 스케줄은 합리적으로 재배치되고 여유 기재는 새로운 취항지에 투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객들에게 보다 더 넓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의 이같은 공언은 올해를 20일가량 남겨둔 시점에 현실화됐다. 대한항공은 지난 12일 아시아나항공의 신주 1억3157만8947주(지분율 63.88%) 취득을 완료하며 자회사로 편입했다.
최종 합병까지는 약 2년의 준비기간이 남았지만, 어려운 고비였던 주요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통과해 인수를 확정짓고 ‘메가 캐리어’로의 도약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맞게 되는 2025년 조원태 회장의 신년사에는 ‘내실 다지기’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확정 이후인 지난 16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큰 축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하나의 회사로 다시 거듭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며 “두 회사가 하나가 되기로 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네트워크 캐리어가 된다. 안전과 서비스 등 모든 업무 절차 전반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지 돌아볼 시점”이라며 안전의식을 철저히 하고 불확실성을 줄여 나가는 데 힘쓸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