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헌의 씨앗 한 톨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이 될까?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기에, 딱히 잘라내 말하듯이 답을 할 수는 어렵겠다. 이미 주었던 것은 차치하드라도, 이제까지 받은 선물 중에서 무엇이 기억을 넘어 추억까지 될까는 더 살펴보고 싶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인연으로 맺어진 아이들이 지난번에는 무슨 날이라고 일부러 찾아왔다가, 책상 위에 큰 병 하나를 놓고 사라졌다. 과실주병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안에 담긴 건 열매와 알코올이 아니었다.
종이로 접은 학들이었다. 나중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천 마리였다. 그만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양도 양이었지만, 아이들의 선택이 뜻밖이었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종이학’이란 노래의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을/나에게 전해주며 울먹이던 너”라는 가사를 아이들이 들어본 적이나 있었을까 싶었다.
나무위키(namu.wiki)의 소개를 빌리자면 “IT 기술과 밈 등 인터넷 문화에 익숙함을 느끼고, 사교 생활에 있어서 SNS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라는 Z세대 아이들이 100 퍼센트 수작업(手作業)으로 곰작거리며 만들었을 모습이 그려지면서 놀랍기만 했다.
색종이로 접힌 종이학들이 한 군데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고마운 마음이 밀려들었지만, 그보다는 미안함이 훨씬 더 컸다.
병에 담긴 종이학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12세기경 고려시대의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紋梅甁)에 새겨 넣은 학들이 생각났다. 하늘로 비상하거나 땅을 향해 내려오는 매병의 학들이 구름과 더불어 노니는 형상이 내 앞에서 실체처럼 다가왔다. 생생한 꿈을 꾸는 듯했다.
아이들의 종이학 선물은 느슨해졌던 내게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깨우쳐 주었다. 한 마리씩 종이학을 접으면서 그들이 사용했을 시간의 무게가 절로 느껴졌다.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또 받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선물이 오늘 하루임을 마음판에 새기는 것도 우리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