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가 커피 한잔을 주문한다. 맞은편엔 에곤 실레가 앉아있다. 그들은 예술과 철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친다. 토론이 길어지면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도 잊지 않는다. 100년 전 비엔나 커피하우스의 모습이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예술가, 학자, 정치인들이 모이는 교류와 담론의 장이었고, 황실과 귀족이 향유하던 고급 디저트를 선보이며 대중을 끌어모았다. 비엔나 곳곳에 녹아있는 맛, 그 두 번째는 ‘커피하우스와 디저트’다.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683년 제2차 빈 공방전에서 패배한 오스만군은 비엔나에 커피콩을 남기고 퇴각했다. 2년 후, 1685년 비엔나에 첫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이를 찾는 사람이 늘면서 18세기 말엔 비엔나 전역에 커피하우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19세기 중반 비엔나엔 400~500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고 추정되며, 1900년 초에는 그 수가 1200개를 넘겼다.
이는 커피하우스가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의 장이자, 비치된 신문과 책에서 정보를 얻는 곳이었다. 클림트, 에곤 실레 등 내로라하는 예술가들도 그 시절 커피하우스에 앉아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다른 이와 만나 영감을 주고받았다. 아직도 오래된 커피하우스 한구석엔 나무틀로 철해둔 그 날의 신문이 켜켜이 쌓여있다.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문화는 그 독창성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커피하우스는 비엔나의 디저트 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 황실과 귀족들이 향유하던 고급 디저트를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비엔나의 디저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67-1918) 때 황실과 귀족의 후원으로 꽃을 피운다. 커피하우스의 황금기와도 맞물린다. 이 시기 비엔나의 디저트는 더 화려하고 다양해졌으며 이는 커피하우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파됐다.
자허토르테, 카이저슈마렌, 아펠슈트르델 등 오스트리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대표 디저트들도 대부분 이 시기에 개발되거나 유명해졌다. 카이저슈마렌(Kaiserschmarrn)은 이름부터가 이미 ‘황제(Kaiser)의 조각(Schmarrn)’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자허 토르테는 당시 견습제빵사였던 프란츠 자허가 외교관이던 귀족의 요청을 받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황실과 귀족의 주도로 만들어진 화려한 디저트만 커피하우스의 덕을 본 것은 아니다. 헝가리나 체코 같은 주변국에서 유래된 디저트들도 이 시기에 소개돼 비엔나 방식으로 바뀌었고 커피하우스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오스트리아식 크레페 ‘팔라친켄(Palatschinken)’, 자두 잼으로 속을 채운 만두 ‘포비들타셔른(Powidletatscherln)’, 만두피로 살구를 통째로 감싸 만든 ‘마릴렌크뇌델(Marillenknodel)’ 등이 그 예다. 모양과 맛은 토르테에 비해 다소 투박하지만 지금도 비엔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전통 디저트다.
비엔나 디저트가 커피하우스 문화와 함께 황금기를 누린 이후에도 비엔나 사람들의 디저트 사랑은 식지 않았다. 식사 후 디저트를 챙겨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가끔은 후식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비엔나 관광청의 마리아 아오야마 그란츠는 그 이유를 ‘종교에서 비롯된 문화’에서 찾았다. 가톨릭에는 ‘사순절’을 포함해 약 100일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는 기간이 있는데 이 기간에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음식을 찾다 보니 달콤한 음식들을 많이 먹게 되었다는 것. 마리아는 “지금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포비들타셔른 같은 달콤한 음식을 먹는 문화가 있다. 오후 3~4시쯤 야우제(Jause)라는 간단한 간식을 즐기는 문화가 있는데 이때에도 달콤한 빵이나 간식을 많이 찾는다. 비엔나 사람들의 일상에서 디저트는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다”라고 설명했다.
[현지인 추천 맛집]
카페 골드에그(Cafe Goldegg)
1910년에 문을 연 아르누보 스타일의 커피하우스다. 황동 샹들리에, 짙은 녹색의 벨벳 장식, 검은 대리석 테이블 등으로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으며 구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전통 커피하우스 문화를 여유롭게 경험할 수 있다. 메뉴는 자허 토르테, 카디날슈니테 등 디저트와 커피를 비롯해 아침 식사, 전통 요리 등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클림트의〈키스〉, 에곤 실레의〈죽음과 소녀〉가 전시된 벨베데레 궁전 근처에 있어 벨베데레를 방문하는 날에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슈테판 성당에서는 트램으로 15분 거리에 있다.
주소: Argentinierstraße 49, 1040 Vienna
가격 정보: 아인슈페너 5,9€, 카디날슈니테 4,9€
예약 정보: www.cafegoldegg.at
카페 코브(Cafe Korb)
1904년에 문을 열었으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주 찾은 카페로 알려져 있다. 슈테판 성당에서 도보 3분 거리로, 비엔나 중심부에 있어 현지인도 많이 찾는다. 내부는 화려하진 않지만 1960년대 스타일의 가구와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세월의 멋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전통 커피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준비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펠슈트르델은 비엔나 최고로 꼽힌다.
주소: Brandstätte 9, 1010 Vienna
가격 정보: 아펠슈트르델 6.2€, 멜란지 5€
예약 정보: (전화만 가능) +43-1-533-72-15
줌 슈바르첸 카멜(Zum Schwarzen Kameel)
1618년 향신료 상점에서 시작된,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베토벤이 즐겨 찾던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슈테판 성당에서 도보 6분 거리에 있으며 세 개 층이 카페, 와인바, 비스트로, 레스토랑으로 구성돼 있다. 오랜 역사답게 전통 방식대로 조리된 요리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으며 특히 바닐라 향이 물씬 풍기는 카이저슈마렌이 일품이다. 1층에는 오스트리아 및 독일어권 국가에서 즐겨 먹는 전통 오픈 샌드위치 ‘벨레그테 브로테(Belegte Brote)’도 만날 수 있다.
주소: Bognergasse 5, 1010 Vienna
가격 정보: 카이저슈마렌 12€
예약 정보: schwarzeskameel.at/shop/pub/kameel
레즈니첵(Reznicek)
오스트리아 전통 요리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레스토랑이다. 슈테판 성당에서 지하철로 20분 거리인 알저그룬트(Alsergrund)에 있다. 아늑하고 전통적인 분위기로, 이곳에서는 전통 요리로 식사한 뒤 살구 잼이 얇게 발린 팔라친켄을 맛볼 것을 추천한다. 달콤하고 풍부한 아로마를 가진 웰시리슬링 귀부 와인을 새콤달콤한 팔라친켄에 곁들여 보는 것도 별미다.
주소: Reznicekgasse 10, 1090 Vienna
가격 정보: 팔라친켄 8€, 귀부와인 한 잔당 16€
예약 정보: www.reznicek.co.at
가스트위츠샤프트 실링(Gastwirtschaft Schilling)
오래된 비엔나 선술집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 레스토랑이다. 슈테판 성당에서 트램으로 20분 거리인 노이바우(Neubau)의 주택가에 있으며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전통 요리와 디저트를 만날 수 있는데, 전통 레시피대로 만든 포비들타셔른을 추천한다. 자두 잼을 채운 도톰 쫄깃한 만두에 빵가루를 볶아 만든 크럼블 토핑과 과육이 살아있는 자두 콤포트(설탕에 절인 과일)가 함께 나온다.
주소: Burggasse 103, 1070 Vienna
가격 정보: 포비들타셔른 10.9€
예약 정보: www.schilling-wirt.at
비엔나=안혜진 쿠킹 기자 an.hye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