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71세 일생 중 음식물 27t 먹는다.” 이 기사는 1994년 겨울 한 일간지에 실렸다. 약 30년 전의 세상을 살았던 평균 한국인은 하루 약 1㎏이 조금 넘는 양의 음식물을 먹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루 얼마만큼의 음식물을 먹으며 살아갈까? 2022년 보건산업진흥원 통계를 보면 약 1400g이다. 그 가운데 300g은 동물성 식품이 차지한다. 우리는 체중의 약 2%에 해당하는 음식물을 죽을 때까지 매일 먹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주 먹는다. 잘 때를 빼곤 꼬박 세 끼를 챙겨 먹는다. 한 끼 식사를 마치면 소화기관은 서둘러 그 음식물을 소화해 흡수한다. 그런 뒤 다음 끼니를 맞이한다. 우리 장은 깨어 있는 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의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2022년 통계로 돌아가 한국인의 주식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짐작하겠지만 1위는 쌀이고 그다음은 우유, 배추김치가 차지한다. 쌀 120g과 빵이나 가루음식 모두 합쳐 탄수화물 섭취량은 하루 250g이 넘는다. 계산하기 좋게 한 끼에 100g의 탄수화물을 먹었다고 치고 식후 몸 안에서 벌어지는 ‘산수(算數)’를 따라가보자.
위를 지나 십이지장으로 들어간 포도당이 한꺼번에 혈액 안으로 흡수되면 우리 몸은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평소 어느 때라도 혈액 안을 떠도는 포도당의 양은 4~6g 정도이다. 밥을 먹어 100g의 포도당이 혈액으로 쏟아져 들어와도 그 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식후 2시간이 지난 뒤에도 최대 8g을 넘지 않는다. 언제라도 혈액 안 포도당의 양을 일정한 범위에 두기 위해 그야말로 여러 기관이 나서서 힘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가장 먼저 나서는 장기는 간이다. 장에서 혈액으로 들어오는 영양소는 무조건 간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간은 약 30g의 포도당을 받아들여 포도송이처럼 줄줄이 잡아 꿴다. 나머지 포도당 대부분은 근육에, 소량은 지방에도 저장된다. 그리고 약 25g의 포도당은 뇌와 콩팥이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물론 사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운동하느라 근육에 저장된 포도당을 덜어 쓰거나 기름진 안주와 함께 술을 거나하게 마셔서 지방을 저장하느라 분주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생활을 영위할 때는 주로 간과 콩팥, 심장과 뇌가 전체 에너지의 60%를 사용한다. 이들이 쓸 에너지를 어김없이 공급하고자 우리는 매끼 먹고 그것을 주로 간과 근육, 그리고 지방에 보관한다. 간과 근육에는 포도당을, 지방에는 지방산을 저장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전체 에너지의 98%는 지방에, 나머지 2%는 포도당에 저장된다. 한 움큼의 포도당은 하루만 굶어도 바닥을 드러낸다. 고집스러운 뇌가 포도당 말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탓이 크다.
포도당의 분배와 쓰임새를 총괄하는 물질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다. 혈액 내 탄수화물의 양에 따라 종일 인슐린의 양이 오르락내리락한다. 20도에 맞춘 보일러가 온도의 등락에 따라 켜졌다 꺼졌다 하는 식이다. 그러므로 췌장이 망가졌거나 비만 때문에 지방 조직에 염증이 생겨 인슐린이 말을 듣지 않으면 신진대사 체계가 흐트러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인슐린이 부족하면 채우면 될 것이고 지방이 문제라면 살을 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가?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는 법이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 북부 사막의 건조한 지역에 사는 힐러몬스터라는 도마뱀에게 물린 사람의 췌장이 붓는 사건이 우연히 포착되었다. 느리게 움직이며 한 번에 체중의 3분의 1 이상의 먹잇감을 먹고 꼬리에 물과 지방을 저장하면 몇달쯤은 끄떡없이 사는 도마뱀의 침 안에 든 독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도마뱀의 독을 분석한 과학자들은 독 안에 혈당을 조절하고 식욕을 줄이며 비만을 억제할 수 있는 단백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한 번의 주사로 살도 빼고 혈당도 조절할 수 있다니 금상첨화 아닌가?
그렇게 위고비(wegovy)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 물질은 비싸고 메스꺼움과 저혈당, 근육 손실 같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요요 현상도 찾아온다. 게다가 오래 약물에 노출되었을 때의 부작용은 짐작조차 못한다. 흔히 굶는 데다 긴 가뭄을 버티는 도마뱀 단백질이 매끼 먹고 냉난방 되는 집에서 사는 인간에게 안성맞춤일 리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답이 궁할 때면 자연을 되돌아보자. 도마뱀이 부작용을 피하는 법을 조목조목 살필 일이다. 관찰이 스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