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빛으로 반도체 신호를 주고 받는 '광(光) 반도체' 기술 투자에 나섰다.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광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굴기'를 견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시장 패권을 쥐려는 미·중 기술 경쟁이 차세대 분야로 확장하는 모습이다.
미국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스(GF)는 최근 미국 상무부 및 주정부 지원으로 '첨단 반도체 패키징 및 포토닉스 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차원(3D) 반도체나 이종결합 등 첨단 패키징 뿐 아니라 미국 독자적인 광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해서다.
실리콘 포토닉스라 불리는 광 반도체 기술은 반도체 신호를 전기 대신 빛으로 전환, 성능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반도체 속도를 수백배 높이고 전력 소모도 적어 인공지능(AI)을 필두로 첨단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재 AI 반도체가 가진 각종 난제를 광 반도체 기술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GF는 뉴욕주에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GF의 12~14나노미터(㎚)급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팹)이 자리해, '파운드리-첨단 패키징-광 반도체 기술'을 연계한 시너지가 예상된다.
미 정부가 직접 지원에 나섰다는 것도 의미가 남다르다. 광 반도체에 대한 미 정부의 적극적 투자 의지가 반영됐다. 센터 전체 투자 금액은 5억7500만달러인데, 이 중 미 상무부가 7500만달러, 뉴욕주가 20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기존에 있던 GF 반도체 보조금에 더해 추가로 집행하는 투자로, 첨단 패키징과 광 반도체 기술 지원을 위해 새로운 명목으로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센터 주요 역할로 항공·우주, 방위 산업에 대한 광 반도체 기술의 '턴 키' 서비스 제공이 꼽히는데, 안보에 직결된 사업이다. 이번 투자로 미국이 독자적인 광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쥐고, 이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광 반도체 기술은 TSMC, 인텔, 삼성전자 등 민간 영역에서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국가 차원 투자도 활발하다. 특히 중국의 투자가 만만치 않다.
중국은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에서 광 반도체를 국가 연구소를 건설해 지원해야 할 분야로 지정했다. 민간 영역에서는 중국 신톤이 2023년 베이징에 광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화웨이와 난징전자기기연구소가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 중인데, 두 곳 모두 미국의 첨단 기술 제재 대상(엔티티 리스트)에 속해있다.
중국 투자는 광 반도체 기술로 미국 반도체 경쟁력을 추월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광 반도체를 통해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 미국의 AI 등 첨단 반도체 기술 수출 제재를 돌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 대해 지난해 10월 존 물레나 미국 하원 중국 공산당 특별위원회 위원장(공화당)과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하원 전략 경쟁위원회 위원장(민주당)은 미 상무부에 “중국 첨단 광 반도체 기술을 제한하고 미국 혁신을 강화해야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