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기억

2025-10-26

며칠 전 루브르 박물관의 대담한 절도 사건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루팡 담론’으로 바뀌었다. “이건 예술이다!”, “이번 세기의 가장 낭만적인 뉴스”와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도난품의 행방보다 그 행위가 남긴 이미지가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사람들은 비난과 분노보다는 흥미와 묘한 경탄으로 반응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이런 대담한 절도에 끌리는 걸까?

이번에 도난당한 것은 단순한 보석이 아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티아라·목걸이·귀걸이 등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제국의 유산이었다. 그것들은 왕권과 정복의 상징이자, 프랑스가 식민지와의 전쟁, 혁명과 제국을 거치며 쌓아 올린 권력의 결정체였다. 그래서인지 이 사건을 둘러싼 낭만은 문화적 판타지를 자극한다. 넷플릭스 ‘뤼팽’의 흑인 도둑 아산 디오프는 루브르에서 백인 귀족의 유물을 훔치며 식민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린다. 이번 현실의 루브르 사건은 묘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범죄의 대담함일까, 아니면 되찾지 못한 정의의 그림자일까?

고대의 전쟁에서든 나폴레옹의 원정에서든, 약탈은 힘의 이름으로 미화되고 폭력은 문명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박물관의 기원은 바로 그 역설 위에 세워졌다. 루브르가 ‘공공의 미’를 대표하게 된 것도 결국 제국의 약탈과 정복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도난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역사의 구조 그 자체를 뒤흔드는 장면처럼 보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화는 종종 약탈의 통로를 통해 전파되었다. 로마가 정복 전쟁을 통해 그리스의 예술품을 쓸어 담았을 때, 동화(同化)가 시작됐다. 로마의 제국미술은 그리스의 예술을 훔치며 탄생했고, 그 덕분에 그리스의 유산은 2000년을 넘어 살아남았다. 역사는 늘 이런 모순으로 진화했다. 중요한 것은 도둑의 대담함이 아니라, 그 행위가 드러낸 우리 문명의 불편한 기억들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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