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청계천 기록한 이한구 사진가

“깊고 더럽고 찬란하다.” 사진가 이한구의 ‘청계천’ 사진 더미를 본 문화평론가 박명욱의 일성이다. 9월 30일부터 11월 16일까지 서울 청운동의 사진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는 이한구 작가의 사진전 ‘깊고 더럽고 찬란한-청계천 1988~2023’의 제목은 바로 여기서 빌려왔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90년대 청계천은 도시의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였다. 섬유·전자·의료·기계는 물론이고 음반·비디오테이프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생산됐다. 오죽하면 그 시절 “청계천에선 로켓이나 우주선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을까. 그만큼 복잡했고, 지저분했고, 살아 있었다.
1988년, 카메라를 들고 명동과 종로를 헤집고 다니며 유명 사진가의 작품을 흉내내던 스무 살 사진과 학생이 우연히 접어든 청계천은 새로운 미래였고, 어쩌면 과거로의 회귀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3년간 숭인초등학교에 다녔어요. 부모님이 청계천에서 일하는 동네 친구들이 많았으니까 오랜만에 돌아온 골목길이 낯설지 않았죠. 촉촉하고 아릿아릿한 게 느껴졌어요.”

명동부터 종로까지 한바탕 사진을 찍고 종로서적 6층 예술 코너에서 사진집을 보며 잠시 쉬어가던 청년은 어느새 청계천을 드나드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청계천이 매력이 있었던 건 삶의 패턴이나 형태가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명동이나 종로는 소비 지향적이고 불특정 다수가 스쳐지나는 거리였다면, 청계천에선 뭔가 끈적거렸죠. 삶의 현장, 바로 그 모습이 벌어졌으니까요.”
우연히 만난 어린 시절 친구가 아버지의 가게로 이끌었고, ‘다 컸으니 너도 술 한 잔 해’라며 대포를 사주시던 친구 아버지는 옆집 사장님을 소개해줬다. 다음날에는 옆집 사장님이 ‘사진과 학생이라는데 여기서 뭘 찍겠다네, 잘 봐줘’라며 또 옆집 사장님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스무 살 청년은 청계천의 다른 부품들처럼 옆집에서 옆집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그렇다고 일이 마냥 쉽게 풀린 것만도 아니다. 거대한 청계천에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방금 뭘 찍은 거냐? 필름을 보자’는 실랑이가 곧잘 벌어지면서 카메라가 3대나 부서졌다. “다음날 친구나 선후배의 카메라를 빌려 또 나갔죠.(웃음) 암실 작업 후 작은 사진을 인화해서 선물도 종종 했어요. 용돈이 풍족지 않았으니까 아주 작은 사이즈로 인화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시절에는 카메라를 장롱에 애지중지 모셔두고 특별한 날에만 꺼내 쓸 때라 다들 사진 선물을 좋아하셨어요.”
그렇게 소소한 아부와 한결 같은 뚝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면서 그의 카메라에는 점점 더 생생한 청계천의 모습이 담겼다. 손님을 기다리는 수레꾼, 신문지 한 장 깔고 사주 봐주는 할아버지, 골목길 운송을 책임지던 자전거 배달 청년, 청계천의 명물로 불리던 색소폰 할아버지, 공구들 틈바구니에서 독서 중인 사장님, 틈틈이 아령으로 근육을 뽐내는 청년,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점심식사, 삼일아파트 구석구석까지. 이 작가는 매 장면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이번 전시작 중에는 ‘청계4가 1992, 프레스공의 퇴근 준비’ ‘청계5가 2013, 잉꼬부부로 소문난 털실가게’ 등 구체적인 제목으로 영화 속 한 장면을 상상케 하는 작품도 있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청계천이라는 이 거대한 장소의 작은 구성물 중 하나가 아닐까. 리어카나 자전거, 멍키스패너처럼. 그 순간 묘한 행복감이 밀려오면서 안심이 되더군요. 이제 도착했구나!”
어떤 나이든 80~90년대 청계천을 한 조각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사진전을 보면서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이 올라올 것이다. 저 풍경에 나는 없지만, 그 시절에 내가 살았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아련함이다. 이 작가가 40여 년 가까이 촬영한 청계천 사진들 중 이번 사진전을 위해 골라낸 작품들의 공통된 느낌이기도 하다. “청계천변 고등학교에서 투신한 자식을 끌어안고 우는 부모, 노숙자들로 위험한 밤길, 얕은 장삿속이 뻔히 보이는 상인들의 비굴한 표정 등도 찍었죠. 만약 제가 30대에 사진전을 했다면 좀 더 자극적인 사진들이 포함됐을지 몰라요. 하지만 50대에 정리해본 나의 청계천은 더럽고 지저분해도, 찬란한 아침 햇살 속에서 열심히 당당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활기와 사랑스러움이 우선이더군요.”

이 작가는 이렇게 애정하던 청계천 사진을 2023년에 멈췄다. 오래된 청계천 풍경들이 하나둘 거리 뒤로 밀리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끝까지 그 스러짐의 기록마저 멈추지 않았던 작가는 가장 사랑했던 공간인 금속공업사 지역마저 무너진 후에는 “촬영의 동력을 잃었다”고 했다. “80~90년대까지가 청계천 최고의 활성기였어요. 대한민국 전체가 그랬죠. 그때는 지지고 볶고 힘들게 살면서도 왠지 모르게 활력이 있었어요. 앞으로 잘될 거라는 생동감이 있었죠. 사진 속 표정들이 다 그래요. 그런데 지금 청계천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달라요. 매끈하게 포장된 거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청년들의 모습이 예뻐 보이긴 하지만, 더 이상 그 옛날의 햇살 같은 낭만은 안 보이더군요. 이제, 나의 청계천을 일단락 지어야겠다, 여기까지가 내 역할이구나 싶어요. 앞으로 내가 다시 청계천을 걷는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를 말하는 사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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