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4월호 기사입니다.
진(Gin)은 호밀 등을 원료로 하는 술을 증류한 뒤 노간주 열매 등 허브를 넣어 향기를 낸, 무색투명한 40~45%의 술이다. 정의는 이렇지만, 진은 주재료나 배합 등에 정해진 규칙이 없는 자유로운 술이다. 네델란드 진(더치 진)을 기원으로 보고,17세기 영국에서 크게 유행해 대중화는 영국에서 이뤄졌다. 잘 알려진 런던 드라이 진이 네델란드 진을 영국인 입맛에 맞춰 달지 않게 만든 술이다. 1750년대 영국인이 마신 진이 5000만L라는 이야기도 전한다.국내 생산은 아직 흔치 않지만, 국산 진 시장을 개척해가는 양조장을 찾아봤다. 눈여겨보면 좋을 국산 진 3종을 소개한다.

홍차의 우아함 입은 부자진 떼 배치
경기 양평의 ㈜부자진(대표 조동일)은 국내 최초 수제 진 증류소다. 우리 농산물을 활용한 프리미엄 증류주를 개발하기 위해 2019년 설립, 2020년 첫 제품을 출시했다. 허브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증류를 전공한 아들이 의기투합해 양평의 농산물을 기본으로 술을 빚고 있다.
조동일 대표는 “런던에서 진을 자주 접했는데, 진도 충분히 깊고 풍부한 풍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농산물로 부드럽고 균형 잡힌 스타일의 진을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시그니처 진’을 시작으로 15종 이상의 진을 선보여왔고, 2025년 ‘부자진 떼 배치(알코올 도수 44%)’를 새롭게 내놓았다. 부자진 떼 배치는 양평의 쌀과 흑미·찹쌀을 발효해 술을 빚고 이를 다시 증류해서 생산한다. 증류 과정에 산에서 채취한 노간주 열매와 다양한 국산 허브를 접촉하게 해 향을 입힌다. 또한 얼그레이 홍차를 추가해 차를 음미하는 듯한 특별한 풍미를 더한다. 증류 후에는 6주 이상 숙성을 거치며 맛과 향을 다듬는다.

“저희 제품은 살짝 차가운 온도(10~15℃)로 온더록스로 즐기기를 추천해요. 와인 잔에 에어링하면서 마시면 향이 풍성하게 퍼지면서 깊이를 느낄 수 있어요.”
고도주가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진토닉이나 유자 하이볼로도 좋다. 곁들일 안주로는 브리·고르곤졸라 등 치즈와 스모크드 연어, 구운 채소, 오리 가슴살 등을 추천한다.
한국 텃밭을 옮겨온 정원
우리나라에도 싱글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곳이 있다. 국내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인 경기 남양주의 기원위스키증류소(대표 도정한, 구 쓰리소사이어티)다. 이 곳에서는 진 제품도 선보인다.
도정한 대표는 “증류소를 준비하면서, 위스키는 숙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스키 출시 전에 숙성 기간이 짧은 화이트 스피릿을 먼저 선보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몰트 스피릿을 기본으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주류인 진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021년 1월, 첫 진 제품인 ‘정원(47%)’이 출시됐다. 정원의 콘셉트는 한국의 텃밭, 혹은 정원이다. 싱글몰트 위스키 스피릿을 베이스로 노간주 열매, 계피, 카더몬과 한국적인 재료인 깻잎, 솔잎, 새싹삼, 초피나무 열매 등 총 12가지의 재료를 조합해 완성한다. 풍성한 향기를 싣기 위해 식물성 재료들을 1차로 침출하고, 증류 과정에서 2차로 향기를 덧입히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정원은 은은한 곡물향과 산뜻한 허브향, 레몬·오렌지 향이 어우러져 상쾌한 느낌을 줍니다. 한국의 정원을 거니는 것 같지요. 차갑게 칠링해 스트레이트로 즐기거나 진토닉으로도 적합합니다. 깻잎, 라임, 오이 슬라이스를 으깨어 토닉워터와 섞어 만든 칵테일은 한국적인 향기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도 대표는 어울리는 안주로 상큼한 과일이나 샐러드를 추천한다고 덧붙인다.
쌀소주의 저력, 홉의 매력 폭스진
경북 문경에 있는 문경주조(대표 홍승희)는 ‘오미자생막걸리’ ‘문희’ 등을 생산하는 정통 탁주·소주 도가다. 문경산 쌀과 오미자로 술을 빚고, 장인이 만든 항아리에서 숙성한다. 문경주조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 파격적으로 선보인 제품이 ‘폭스진(25%)’이다.
홍승희 대표는 “폭스진은 쌀소주를 베이스로 하고, 직접 농사지은 홉(Hop)으로 향을 더한 홉진(Hop Jin)이에요. 처음 맛본 사람들은 이게 진이 맞느냐고 하는데, 진은 다양한 식물성 재료로 만들 수 있어요. 그게 진의 매력이죠.”라고 말했다.

폭스진은 문경 쌀로 탁주를 빚은 다음 증류하고, 여기에 홉을 넣어 최소 6개월 이상 침출한다. 그다음 2차 증류를 거친다. 두 번 증류해서 쌀소주 특유의 향을 제어했다. 이렇게 생산된 술은 항아리에서 1년 이상 숙성한다. 술이 출시되기까지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 셈이다.
폭스진은 투명하면서 옅은 노란빛을 띤다. 부드러운 쌀소주의 풍미와 홉의 터치가 느껴진다. 도수가 높지 않아 차게 해서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좋고, 하이볼로도 추천한다. 홍 대표의 추천 하이볼 레시피는 토닉워터와 1대 2로 섞는 것.
“스트레이트로 즐길 때는 깔끔한 회나 해산물이 좋지만, 하이볼은 탄산감이 있어서 떡볶이나 피자 같은 맵고 기름진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글 길다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 사진 전승 기자, 각 업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