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대한민국 위기의 징후들

2025-02-02

긴 연휴 끝 돌아온 일상이지만 나라는 여전히 먹구름 속이다. 검찰의 구속 기소로 윤석열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심판(계엄령·포고령의 위헌 여부)과 함께 중앙지법의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 죄’에 대한 투 트랙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이 모든 법적 절차와 결론은 우리 사법부의 양심과 정의에 맡기는 게 최선일 터다. 그런데 최근 혼란의 현장들 중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본질적 위기의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서서히 끓는 냄비 물속 개구리처럼 모른 채 지나가버리면 나라가 거의 심리적·정치적 내전 상태로 치달을 수 있을 우려의 징표들 말이다. 최근 학계·언론계에서 소환되는 바버라 월터(UC샌디에이고대 교수)의 저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연휴 직전 우리의 곳곳 장면들이 우발적, 일시적이 아닐 수 있음을 각성시켜 주고 있다. 월터 교수와 연구진은 2차대전 이후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사당 습격까지 전 세계 수백여 건의 정치 불안정 사례를 분석했다. 그러곤 자칫 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공통의 경로를 찾아냈다. 아, 그 섬뜩한 징후들(#의 제목들)은 바로 요즘 우리 사회의 그것들이었다.

미 의사당 점령 폭동의 닮은꼴인

서부지법 난동과 선동의 촉매 SNS

정치적 내전 향할 우려 장면 곳곳

예방은 완전한 민주주의 제도뿐

#“STOP THE STEAL.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상실감, 그걸 선동하라”=2021년 1월 6일. 대선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백악관 앞 시위는 부정선거로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STOP THE STEAL’ 피켓들로 가득했다. 윤 대통령의 체포·구속에 저항하는 시위대 역시 이를 그대로 차용(그 밑엔 ‘부정선거 검증’ ‘SAVE KOREA’도 적혀 있다)한다. 트럼프 추종자들은 당시 “미국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바이든의 탈취를 내버려둘 수 없다”고 외쳤다. 성경을 든 이도, ‘하느님, 총, 트럼프’의 티셔츠도 보였다. 한 목사는 “하느님이 애국자 군대를 일으키는 중”이라 했다. 극단주의자들은 부통령 펜스, 하원의장 펠로시 등 의원들을 체포하라고 부추겼다. 우린 “서부지법의 대통령 구속 판사 색출”이었다. 미 의사당의 폭도들은 수갑용 케이블 타이(우리 계엄군이 국회에 갖고 온)에 장전 권총까지 챙겼다. 우리의 한 유명 우파 유튜버 역시 “윤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를 희생했다.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하자”고 인터뷰한다. 묘한 오버랩이다.

사람은 잃는 걸 가장 싫어한다. 원래 제 소유라 여긴 걸 빼앗으려는 자들이 증오의 대상이다. 하긴 문재인이든, 윤석열이든 어떻게 빼앗아 온 정권인가. 그러니 빼앗으려 하는 자들은 ‘반국가 세력’ 타깃이다. ‘하느님’ ‘사랑’ ‘소명’ 등의 자기 연민도 녹여 “애국자들이 뭉쳐 싸우러 나가자”고 한다. 잃지 말자는 선동. 모든 내전의 공통 출발점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에 벌써 자석의 양극으로 똘똘 뭉친 게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묻지마 박빙 여론조사다.

#“진실과 고요? 분노를 훨씬 좋아한다. ‘현대판 판도라의 상자’ SNS”=2020년 미 대선 직후 기존 소셜미디어에 성이 안 찬 세력이 대거 ‘팔러’라는 SNS로 이동한다. 의회 점령 경로, 장비·도구를 퍼나른다. 우리의 서부지법 난동 때도 “판사 살해” 등 예고 55건이 SNS에 퍼졌다. 취약한 후문 쪽 담벼락 높이, 공수처 차량 번호 등도 함께다. 오래 사용자를 묶어 놓아야 광고수익이 오르는 게 소셜미디어다. 한때는 쌍방 커뮤니케이션 확대라는 미디어 역사의 기여도 평가받았다. 그 ‘좋아요’ ‘퍼나르기’가 이젠 선동의 촉매다. 격분해야 리트윗이 20% 늘고(뉴욕대), ‘좋아요’ ‘공유’는 2배다(퓨리서치센터). 기존 정치를 싸잡아 비난하며 2030을 충동해 권력을 쥐려는 포퓰리스트와 아웃사이더들에겐 최고의 무기다. 요즘 대목인 우리 극단 유튜버들의 억대 월수익만큼 사회 갈등의 게이지가 치솟아 간다. 월터 교수는 “소셜미디어들은 극단에 기름 퍼붓는 선동의 송유관이자 현대판 판도라의 상자”라고 했다. 밋밋해 인기 없는 레거시 미디어(신문·방송의 전통 매체)들이야말로 더더욱 검증·여과, 팩트를 단단히 사수해야 할 기로의 위기다.

#“못 알아차리게 합법 안에서 독재를 추진하라”=계엄이건, 탄핵이건 모두 “민주주의, 법의 틀 안에서 나라·국민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윤 대통령의 계엄이야 분명히 요건이 안 된 ‘몽상적 광기’였다. 법의 저촉을 피해가려다 결국 “국회 요원들을 끌어내라 한 것”이란 블랙코미디가 되고 있다. 계엄 이전 탄핵·특검으로 날 새운 절대과반의 ‘의회독재’에 대해선 민주당 역시 한마디의 자성이 없다. 여야 모두 승자 독식의 권력 확대와 검찰·사법부 장악 등의 ‘독재 충동’에 충실한 결과가 지금의 위기다.

월터 교수는 “직접선거 등 부분적으론 민주적 특징이 더 많은 국가의 정치 불안 가능성이 완전한 독재보다 2배, 완전한 민주 정부보다 3배가 높다”고 결론냈다. 문제는 어정쩡한 가짜 민주주의였다.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 승자 독식과 제왕적 대통령제 해체의 완전한 민주주의로 못 건너가면 이 위기들은 제어 불능인 시대다. 눈을 부릅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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