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OO' 아니면 감독도 선수도 못하는 日야구팀[송주희의 일본톡]

2025-03-18

송주희의 일본톡에서는 외신 속 일본의 이모저모, 국제 이슈의 요모조모를 짚어봅니다. 닮은듯 다른, 그래서 더 궁금한 이웃나라 이야기 시작합니다.

“우리팀은 전원 사토” “우리는 전원 스즈키”

지난 9일, 일본 도치기현 사노시에서 ‘독특한’ 야구 시합이 열렸습니다. 겉으로 보면 여느 경기와 다름 없지만, 중계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투수 사토, 포수 사토, 1루수 사토…전원 사토입니다.”(장내 아나운서)

상대 팀도 재밌습니다. 8번 타자 스즈키 씨가 부상으로 교체되는데, 교체 선수 역시 스즈키입니다.

코미디 프로그램 아니냐고요? 이 경기는 ‘3월 10일 사토의 날’을 기념해 ‘사토’씨와 ‘스즈키’씨로 구성된 야구팀이 벌인 실제 행사였습니다. 그야말로 ‘성씨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죠. 참고로, 사노시는 사토 성씨의 발상지라는 설(說)이 있어 사토의 날을 지정해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해 왔고, 이번에 야구 행사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참가자를 모집해 양팀 15명씩 선수를 선발했다고 하죠.

그런데 왜 하필 ‘사토’와 ‘스즈키’인 걸까요. 일본의 성씨 연구가에 따르면 일본에는 약 13만 종류의 성씨가 있는데, 이 중 가장 많은 게 사토 씨, 그 다음이 스즈키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이·박씨에 해당하는 거겠죠. 13만개의 성씨 중 5만 종은 ‘5가구 이하’로 남아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사토’가 전체의 1.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재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일본인 모두가 ‘사토'가 되는 날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는 ‘모든 선수가 사토 씨인 야구 팀’이 ‘재미’를 넘어 언젠가 걱정스러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호쿠대학의 요시다 히로시 교수가 발표한 연구 결과인데요. 요시다 교수는 ‘부부가 반드시 동일 성씨를 써야 하는 일본의 현행 제도가 지속될 경우’를 전제로 약 500년 후인 2531년에는 일본인 전원이 사토씨가 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결혼하면 부부가 반드시 같은 성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간 약 50만 쌍이 결혼하고, 한쪽이 배우자의 성을 따르면서 그만큼의 성씨 사용자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미 소멸된 성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일본 인구 중 사토씨의 비율은 매년 0.83%씩 증가하고 있는데요. 이 추세대로라면 2446년에는 일본인의 50%가, 2531년에는 100%가 사토씨가 된다고 합니다.

결혼하면 부부는 ‘같은 성’을 써야 한다고?

“선택적 부부별성 도입을” 오랜 줄다리기

만약 결혼 후에도 부부가 다른 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2022년 다른 단체에서 추산을 해봤는데요. 약 40%의 부부만 동성을 선택한다고 가정할 경우 사토씨의 1년 증가율은 0.325%로 둔화됩니다. 2531년에도 사토씨 비율은 7.96%에 그쳐 다양한 성씨가 유지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혼 후 성을 어떻게 가져갈지는 선택에 맡기자’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는 일본에서는 수년간 논의가 이뤄져 온 사안입니다. 상당수 부부는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 성 평등, 다양성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이에 법무대신의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가 1996년에 선택적 부부별성 도입을 제언했지만, 국회의원들 사이에 반대 의견이 있어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경단련이 도입에 필요한 법률 개정을 제언한 데 이어 올해 1월부터 시작된 통상국회에서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제도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진통은 여전합니다. 보수 진영에서 ‘가족의 일체감’ 등을 내세우며 반대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보수 진영 ‘가족 일체감 전통 지켜야' 강경

지난해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초반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뒷심 부족으로 고배를 마신 바 있는데요. 그가 ‘총리가 되면 1년 안에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 게 표를 깎아 먹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당 핵심 지지층인 강경 보수 세력이 ‘가족은 모두 같은 성을 쓰는 일본 전통의 문화를 지켜야 한다’며 등을 돌렸다는 것이죠. 자민당이 올해 관련 논의를 본격화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여전히 당 내 찬반이 팽팽하고, 도입 법안을 제출해야 할 야당에서도 세부 입장이 갈려 제도 도입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택적 부부별성의 법제화를 주장하는 사단법인 ‘내일엔’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해 4월 1일 만우절에 요시다 교수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姓)에 대한 고민을 환기하는 ‘씽크 네임 프로젝트(Think Name Project)’를 펼쳤습니다. 취지에 공감하는 40여 개 기업과 함께 간판, 주택 문패, 상품 포장지, 유니폼 등에 들어가는 사람 이름을 모두 ‘사토’로 바꾼 사진과 영상을 공유한 것인데요. ‘3인제’ 농구를 프로팀을 전개하는 ‘도쿄BB’는 양팀 총 6명의 선수 모두가 ‘사토’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 동영상을 만들었고, 주택건설 회사인 ‘아이다 설계’는 모든 주택 외벽에 ‘사토’라고 쓴 문패가 걸린 사진을, 식품 구독 서비스 전개 기업인 오이식스는 배달 채소 포장지에 생산자 이름이 전부 ‘사토’인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만우절 거짓말 같은 ‘사토씨의 세상’은 정말 현실이 될까요? 자신의 성씨를 지킬 권리와 가족의 일체감 사이에서 일본 사회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저는 ‘더 궁금해지는’ 다음 주 일본톡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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