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의 반격’ “더 이상 미국의 그림자가 아니다”…CNN 심층 분석

2025-03-20

1934년, 미국 야구 스타들이 일본을 찾았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지미 폭스 등 당시 최고 선수들이 참가한 팀이 일본을 순회하며 18경기를 치렀다. 일본 올스타 팀과의 대결에서 미국 대표팀은 18전 전승을 거뒀다. 일본인 50만 명 이상이 도쿄에서 그들을 환영했다.

그리고 90여 년이 흐른 2025년 3월. 또 다른 두 개의 미국 팀이 일본 땅을 밟았다. LA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가 일본에서 미국프로야구(MLB) 시즌 개막전인 ‘도쿄 시리즈’를 치르기 위해 도착한 것이다. 1934년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CNN은 지난 18일 “이번에는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이상 LA 다저스), 스즈키 세이야, 이마나가 쇼타(이상 시카고컵스) 등 일본 출신 스타들이 단순히 ‘초청받은 손님’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주역으로서 ‘귀환’했다”고 전했다.

CNN 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야구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1896년 일본과 미국의 첫 공식 경기 이후 야구는 일본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도쿄 제1고등학교(일명 ‘이치코’) 학생들은 요코하마 컨트리&애슬레틱 클럽 소속 미국 상인, 선교사, 무역업자들로 구성된 팀과 경기를 치렀다. 경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일본팀이 29-4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일본 야구 전문가 로버트 화이팅은 CNN을 통해 “이 승리는 일본에 있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은 봉건 시대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 세계와의 교류가 단절되었고, 외국 문물에 대한 콤플렉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야구에서의 승리는 일본이 서구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마츠다이라 츠네오 전 주미 일본 대사는 “이 승리 이후 일본 전역에서 야구가 들불처럼 번졌다”며 “심지어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초등학생들조차 방망이와 공을 들고 뛰어놀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이 시기 일본 사회는 근대화를 추진하면서도 ‘와콘요사이(和魂洋才·일본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더한다)’라는 철학을 내세웠다. 즉,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되, 이를 일본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개념이다. CNN은 “이 철학은 일본 야구 발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치코 선수들은 “우리는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통해 일본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야구의 특징은 전통 무도(武道)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화이팅은 “이치코 선수들은 대다수가 사무라이 가문 출신이었고, 그들의 훈련 방식은 철저히 무도 정신을 따랐다”며 “미국에서 야구는 봄과 여름에만 하는 스포츠였지만, 일본에서는 일 년 내내 훈련하는 스포츠가 됐다. 철저한 자기 헌신이 요구되는 스포츠로 변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마에다 겐타(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일본에서는 훈련 시간이 더 길고, 훈련 강도가 훨씬 높다”고 밝혔다.

1934년 미국 대표팀이 일본을 방문한 지 10년 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하지만 야구는 전쟁 속에서도 일본 문화의 일부로 깊이 자리 잡았다. 일본군이 미군을 향해 돌격할 때 “베이브 루스 따위는 지옥으로 보내버려라”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있다. 이 시기 일본에는 이미 프로야구 리그(Japanese Baseball League·JBL)가 형성돼 있었다. JBL은 1950년 ‘니혼 프로야구(NPB)’로 재편됐다. 1960년대 일본 프로야구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는 당시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두 거인이었다. 오 사다하루의 통산 홈런 868개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기록으로, MLB 최다 홈런 보유자인 배리 본즈(762개)를 뛰어넘는 숫자다. 이들의 활약 속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일본시리즈 9연패를 달성하며 최강 팀으로 군림했다.

1995년 노모 히데오가 LA 다저스에서 데뷔하며 일본 야구의 역사가 바뀌었다. 그는 MLB에서 신인왕을 차지하며 일본 선수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후 스즈키 이치로(MLB 단일 시즌 최다 262개 안타), 마쓰이 히데키(2009년 월드시리즈 MVP),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르빗슈 유 등 일본 출신 선수들이 줄줄이 MLB에 도전했다.

2025년 현재 가장 위대한 일본 선수는 오타니 쇼헤이다. 2024년 그는 투수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54홈런-59도루를 기록하며 ‘MLB 최초 50-50 클럽’ 멤버가 됐다. 화이팅은 “오타니는 어떤 비판도 할 수 없는 선수다. 그는 500피트(152m) 홈런을 날리면서, 시속 100마일(161㎞) 강속구를 던진다. 그의 존재 자체가 경이롭다”고 극찬했다.

일본 팬들은 자국 선수들은 일본프로야구(NPB) 인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MLB에서 일본 선수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미국을 이겼다”는 감정을 느낀다고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CNN은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야구는 더 이상 미국 야구의 그림자가 아니다. 이제는 그 중심에 서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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