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팀→꼴찌팀, 그리고 우승···톰 브래디가 그랬던 것처럼, BNK에 ‘우승 DNA’를 이식한 박혜진

2025-03-21

2000년대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미국프로풋볼(NFL)을 넘어 미국 4대 프로스포츠를 대표하는 ‘왕조’를 구축했다.

당시 뉴잉글랜드의 전성기를 논할때 많은 사람들은 3명의 인물을 꼽았다. 빌 벨리칙 감독, 로버트 크래프트 구단주, 그리고 쿼터백 톰 브래디였다.

이 3명 중 누구의 공이 더 큰가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20년 브래디가 뉴잉글랜드를 떠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하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은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알게 됐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던 탬파베이는 브래디 이적 첫 해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드루 브리스, 애런 로저스 같은 명쿼터백과의 승부를 줄줄이 이겨냈고, 슈퍼볼에서는 현역 최강의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마저 무너뜨렸다. 브래디는 2022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탬파베이는 슈퍼볼 우승을 시작으로 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고 있다.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박혜진을 영입한다고 했을 때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우리은행 왕조의 핵심 중 핵심인 선수로, 우리은행에서만 8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하고 5번의 정규리그 MVP, 3번의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는 등 여자농구 올타임 베스트를 뽑아도 들고도 남을 그가 15년을 몸담은 우리은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박혜진이 이적하는 팀이 지난 시즌 최하위팀 BNK였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물론 BNK가 박혜진의 고향인 부산을 연고로 하는 팀이긴 했지만, 그 외에 BNK와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2023~2024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박혜진을 향해 다가간 사람은 박정은 BNK 감독이었다. 공교롭게도 박 감독 역시 부산 출신이며, 심지어 둘은 동주여중 동문이기도 하다.

박 감독의 설득에 이적을 결심한 박혜진은 이번 시즌 역시 우리은행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소니아와 함께 BNK를 바꿔놨다. 개막 6연승을 달리며 승승장구한 BNK는 전반기를 12승3패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이후 4~5라운드에서 5승5패에 그치며 주춤했다. 박혜진이 족저근막염과 발목 통증으로 장기간 이탈해있던 시기였다. 박혜진은 이후 정규시즌 최종전에서야 복귀했지만, 정규리그 우승은 아산 우리은행으로 넘어간 뒤였다.

박혜진의 진가는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났다.

BNK는 2년 전 우리은행과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패로 물러났다. 안혜지, 이소희 등 뛰어난 선수들은 많았지만, 큰 경기의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삼성생명과 플레이오프에서 박혜진은 1차전 21점을 올리며 기선제압을 이끌었고, 2연승 후 2연패로 몰린 마지막 5차전에서 11점을 보태며 BNK가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데 뒷받침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박혜진의 활약은 이어졌다. 1차전에서 팀내 최다인 14점을 올렸고, 3차전에서는 결승 3점포를 작렬하며 끝내 3연승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전성기 때와 비교했을 때 박혜진의 활약이 크게 눈에 띄었다고 평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혜진이 가져온 ‘우승 DNA’는 BNK 선수들에게 깊숙이 이식됐고, 이는 피말리는 접전에서도 BNK가 흔들리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주역은 후배들에게 맡겨놓고, 박혜진은 묵묵하게 뒤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챔피언결정전 MVP는 안혜지가 가져갔지만, 박정은 BNK 감독이 마음 속 MVP로 박혜진을 꼽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산 9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박혜진은 2번만 더 정상에 오르면 강영숙(은퇴)이 보유한 역대 최다 우승 기록(11회)과 타이를 이룬다. 경기 후 이와 관련된 질문에 박혜진은 “우승해서 이렇게 좋다고 하지만, 내일이면 또 지난 일이 된다. 조금 쉬다가 그냥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준비하겠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레전드’의 품격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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