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모씨는 최근 2주 전 예약한 서울 성수동의 ‘아모레 성수’를 방문했다. ‘헤라 센슈얼 립 커스텀 매치’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인공지능(AI)이 피부 상태를 진단해 맞춤형 립스틱을 즉석에서 제작해주는 서비스다. AI가 피부 톤에 맞는 색 12가지를 추천했고 3가지를 골라 입술에 발라본 뒤 제형과 향을 고르니 10분 후 세상에 하나뿐인 립스틱이 만들어졌다. 김씨는 “일대일로 요구 사항에 맞춰 진행된다는 점이 좋았다. 맞춤으로 제작한 립스틱이라 마음에 안들 수가 없다”라고 했다.
‘초개인화’가 최근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뷰티·패션 등 유통업계가 AI 활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입고 꾸미고 먹는 것까지 AI로 소비자 요구를 정밀하게 반영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AI가 유통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은 뷰티업계에서 AI 도입에 가장 열성적이다. 2023년부터 AI를 다양한 분야에 두루 적용하고 있다. AI 분석을 바탕으로 맞춤형 파운데이션·에센스·립스틱 등의 화장품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2023년 4월 런칭한 맞춤형 파운데이션 제조 서비스인 ‘헤라 실키 스테이 커스텀 매치’는 지난해 월 평균 1500명이 이용했다. 회사에 따르면 이런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장 4곳의 매출은 서비스 제공 후 적게는 63%에서 많게는 977%까지 성장했다. 공식 온라인 쇼핑몰인 아모레몰에서 지난해 1월부터 제공하는 AI 피부 진단 서비스 ‘스킨노트’의 누적 이용 건수는 14만건을 넘는다.
서경배 아모레 회장은 25일 미국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AI 분야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AI 서밋’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나델라 CEO는 매년 한국의 기업인과 교류해왔다. 하지만 뷰티업계와 만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아모레 측은 이번 회동이 AI 서비스를 고도하기 위한 전략적 협의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노치국 아모레퍼시픽 AI솔루션팀장은 “고도화된 AI 뷰티 카운셀러 서비스를 이르면 올해 안에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AI는 패션업계의 판매 방식도 바꿔가고 있다. 패션 전문몰 1위(1월 월간활성사용자 936만명)인 에이블리는 자체 개발한 AI 추천 기술을 내걸고 시작됐다. 가령 꽃무늬 원피스를 클릭하거나 찜하면, 이런 원피스를 좋아하는 다른 사용자가 선호하는 트위드 원피스나 블라우스 등의 스타일을 추천한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취향 같은 가격 이외 요소가 구매 결정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했다”라며 “30억개의 빅데이터를 보유한 만큼 정교한 추천이 가능하다”라고 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빅3 유통 대기업들도 오너가 직접 나서 AI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AI 전환을 한발 앞서 준비하면 새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일정 당시 AI 정책 책임자로 임명된 데이비드 삭스와 만나 “AI 같은 신기술을 유통에 접목해 고객 경험을 확대하는 부분에 관심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 기업은 업무 효율뿐 아니라 맞춤 서비스를 통한 고객 경험 강화에 AI를 속속 접목하고 있으며, 분야를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민석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정책팀장은 “AI는 기존의 운영방식과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라며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효율성 증대를 넘어 소비자 경험의 질적 향상과 새로운 시장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