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귀를 막아도 들리는 비명(悲鳴)소리] 주여 다시는 이 땅에…

2025-04-26

신라말의 대학자(大學者) 최치원은 우리 가문의 시조(始祖)이시다. 이 시조로부터 아래로 가까운 대(代)에 이르면 한 분의 큰 인물을 만나게 된다. 최승로(崔承老)란 할아버지다. 그는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그 왕조시대에 벌써 아득한 미래를 내다보는 이상적인 세상을 바라보며 임금에게 건의문을 올렸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없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였다.

어느 한순간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하고는 명이랍시고 퍼즐 놀이하듯이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사회를 개혁하고 개인의 삶을 깔아뭉개 버리고 있는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한낱 가녀린 생명체로 신음하던 나였다. 눈을 감고 조용히 되돌아보면 실상 가녀린 생명체였지만 용하게 견디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승로 할아버지가 지금 시대에 살아 계시다면 어느 한 사람이 아닌 엄청난 집단이 자신의 삶을 무참하게 짓밟힌 그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 대시인(大詩人) 고은(高銀)은 그의 수상록 <이름 지을 수 없는 나의 영가>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 만해(萬海)가 있다면, 이 똥 구더기만도 못한 녀석아! 하고 욕사발을 얻어먹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화를 풀지 않고 이 상구더기 같은 놈들아 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 늙고 젊고를 불문하고 끌어다가 다 병신을 만들어 놓고서 뭐! 사회를 정화한다고?… 영혼을 순화시킨다고? 네놈들이나 정화하고 순화시키지 뒈질 놈들아!하고 대갈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승로 할아버지가 활동하던 그 시대는 신라의 사직이 무너지고 잠시 격랑을 잠재우던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언제 조용하게 정의롭고 자유스럽게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삶을 대를 이어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있었던가? 외침이 아니면 나라 안의 당파 싸움으로 인한 사화 등 피비린내 나는 편 가르기로 날을 지새운 충돌뿐이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또 다시 찬탈한 정권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지막 발악의 욕심 때문에 얼마나 신음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있었던가? 양심적인 사람에겐 영혼을 뭉개버리는 고문이 있었을 뿐이다.

그 고문은 나에게만 가해진 고문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국민들에게 가해진 고문이며 피 흘린 시절이 남아있는 한 이 겨레는 어쩌면 인간이라 부르지 못할 그들을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려놓은 비인간적인 망나니의 통치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의 서막은 인간의 양심에 반하는 무자비한 고문과 전주 같은 목봉을 힘겹게 들게 하면서 군화 발길로 걷어차면서 호각을 불었다. 이러한 불법을 은폐하기 위해서 민중의 눈과 귀가 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 꺼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휘둘러진 암흑의 역사가 어찌 지워지고 잊혀질 수 있을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생쥐를 실험실에 가져다 놓고 생체 실험을 하듯이 몽둥이와 총으로 지레 겁을 주며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 제5공화국의 주구들이다. 그리고 그 실험에 생쥐가 되어 당했던 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끝)

최종두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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