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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레전드 편을 내놓는 화제 예능인 리얼 데이팅 프로그램 ‘나는 SOLO’(나는 솔로 / SBS Plus, ENA 공동 제작)가 28기를 맞아 '돌싱 특집'을 선보인 가운데, 본인 소개에서 '사실혼' 관계였음을 드러낸 출연자들이 다수 포착됐다.
최근 이재명 정부 대통령실 차원에서도 친구·연인과의 동거나 사실혼 관계로 이뤄진, 비혼 동거 및 비혼 출산 등 이른바 '비친족가구'에 대해 "(이들을) 새로운 가족 유형으로 공식 인정하란 목소리가 있다"며 "제도 개선을 검토하라"고 관계 부처에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향후 '법적 가족' 테두리를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우리 사회에 자주 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나는 솔로 : 돌싱특집', 눈에 띄는 ‘사실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4월 발간한 '비친족가구 그들은 누구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비친족가구는 가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의 가구"로 정의된다. 그중에서도 2인 가구가 78.9%, 3인 이상 가구는 21.1%로 2인 가구 비중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실질적으로 상호 부양과 돌봄을 하고 있는 형태로, 사실상 배우자 관계와 거의 유사한 관계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나는 솔로' 28기 돌싱 특집에서도 '비친족가구'는 꽤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일 방송분에서는 남녀 출연자들의 자기소개와 직업, 이혼 사유를 밝히는 장면이 전해졌다. 홀로 자녀 셋 키우는 부동산 경매업자 현숙부터 91년생 명문대 출신 전문직 싱글맘 옥순, 식품 스타트업 CEO 영수, 아이돌 음반 기획자이자 고3 딸을 홀로 키우는 광수 등 다양한 배경의 출연자의 면면이 공개됐다.


그들 중 '사실혼' 관계로 가정을 꾸리다 이혼했다고 밝힌 출연자도 다수 등장했다. '28기 영호'는 3년간의 사실혼 생활을 끝내고 2022년에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그의 나이는 현재 35세로, 자녀는 없지만 '젊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해 여성 출연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8기 정숙'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상대와 2022년에 결혼했지만 사실혼 상태로 1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오다 2023년에 관계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28기 영자'도 상대와 불과 4~5개월 만에 갑자기 결혼하게 됐지만 여러 문제가 생겨 지난 2013년에 사실혼 관계를 종료하고 현재는 14살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혼·비혼출산 늘어나는 까닭은
'나는 솔로 돌싱편' 사례처럼, 한국 사회에서 '사실혼' 형태의 가족 및 가구 형태는 실제로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혼·비혈연가구(비친족가구)는 2015년 21만4421가구(47만1859명)에서 지난해 58만413가구(123만2483명)로, 10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더욱이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는 1만 3800명, 전체 출생의 5.8%를 차지했다. 2020년 2.5%에서 불과 4년 만에 두 배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사실혼 관계가 늘어나는 원인은 사회·경제·구조적 변화에 있다. 개인주의 확산과 가치관 변화가 결혼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다 이혼율 증가, 초혼 연령 상승,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도 동거와 사실혼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주택청약에서의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혼인신고를 늦추는 MZ 커플, 상속 문제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혼인신고를 피하는 실버 커플도 이제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주거, 취업 불안, 소득 불균형 등 경제적 불안이 혼인신고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문제는 현실과 법률의 괴리에 있다. 현행법상 가족이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단위만 인정하고 있어 제도적 사각지대로 인한 복지혜택과 법적인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 주택 청약이나 상속, 자녀 보호자 자격, 자녀 돌봄에 있어서 출산휴가 등 주요 제도에서 소외되는 것은 물론 편견과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고립과 소외, 관계의 불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갈수록 높아지는 집값에 젊은 부부들은 집을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주택 청약이 절실하지만, '혼인 관계'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아 혼인신고를 미루며 비혼 상태를 유지하는 '비자발적 비혼'이 양산되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상황에서, 주택 청약시 적용받는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이 낮게 책정된 탓에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없거나 청약 특공에 지원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전통적 가족제도 붕괴’ 우려 나오지만…
이 때문에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달 2일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생활동반자법'을 재발의한다고 알렸다. 용 의원은 “1인 가구는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고, 110만명이 넘는 국민이 법적 가족이 아닌 친구, 연인, 동료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며 “국민 10명 중 7명이 혈연이나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국민 10명 중 3명은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혼인과 혈연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살 집을 구하거나 공동으로 대출을 받을 수 없고,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법과 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응급상황에 동반자의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도 없고, 장례의 상주가 되어줄 수도 없다”고 지적하며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실도 나섰다.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에 따르면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달 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비혼 출생아가 역대 최대를 차지했다는 통계를 거론하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비혼 출산과 관련한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이나 법안을 검토한 것은 아니나 이 대통령도 해당 문제에 관심이 높은 만큼 이번 정부 내에서 논의가 상당히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통적 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사회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최근 연예계를 중심으로 배우 정우성·모델 문가비의 혼외 출산, 배우 이시영의 이혼 후 ‘냉동배아 임신’, 방송인 사유리의 비혼 출산 등이 달라진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바 있지만 이후 여러 논쟁이 촉발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뚜렷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보호할지 다양한 논의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