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걸음과 다른 가재걸음

2025-02-03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옛날엔 종다리(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엮어 만든 작은 바구니) 들고

앞 개울만 나가도 가재가 지천으로 있었습니다.

요즘엔 전기의 영향인지 아니면 1급수가 적어서 그런지 가재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엊그제 두륜산 중턱에서 가재를 보았으니

유년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긴 것이 비슷하니 같은 편이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게걸음과 가재걸음은 차이가 큽니다.

게는 오직 옆으로만 걸어 다닙니다.

어미 게가 나처럼 똑바로 걸으라고 시범을 보일지라도

그 똑바름이라는 것이 옆으로 걷는 것이지요.

그에 비하여 가재는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닙니다.

그러다가 위험에 직면하면 꼬리를 이용하여 쏜살같이 뒤로 물러나 자신을 보호합니다. 가재가 뒤로 가는 모습은 역행하고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최적의 선택입니다. 어쩌면 가재걸음이 아니라 가재의 회피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재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인터넷서핑이나 사진 자료를 통하여 설명해 주는 것이 대부분인데

가재의 생활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재도 아가미가 있어 물속 생활을 합니다.

가끔 물 밖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생존은 아가미가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로 한정됩니다.

물 밖에서는 회피 행동을 할 수 없으니 그저 잡기 쉬운 먹이가 됩니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합니다.

그리고 앞만 보고 가는 경향이 있어 항상 앞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하지요. 그런데 가끔 뒤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재의 뒷걸음처럼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관조할 수 있어야 하지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뒷걸음치는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현재의 자신을 성찰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지혜를 얻는 과정일 수 있으니까요.

손자병법에는 ‘주위상책(走爲上策)’이 나옵니다.

달아나는 것이 최상의 계책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형세가 불리하게 진행될 때는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항복이지요. 이것은 완전히 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화친을 맺는 것입니다. 불리한 상황에서의 화친은 절반은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도망가는 것이지요. 이것은 절대로 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요.

인생은 마라톤 같습니다.

가끔은 물러서서 주변을 관찰하고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잠시 물러섬은 결국 앞으로 가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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