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답사] <울산지역사답사회 공동기획> 통도사 암자를 찾아서-서축암과 극락암

2024-07-04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서축암(西鷲庵)

서축교를 건너고 또 세심교(속진교)를 건너 들어간다. 세심교는 불기 2540년에 만들었으니 서기로는 1996년이다. 모든 전각에 단청이 없으나 무량수전 편액만 단청이 있다. 중심 전각인 무량수전은 청기와다. 아미타 부처님과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세 분의 불보살은 신성한 존재로서의 위대함과 초월성을 상정하는 광배(光背)가 찬란하다. 머리의 두광(頭光), 몸에서 발산하는 신광(身光), 그리고 두광과 신광을 포함하여 몸 전체를 감싸는 거신광(擧身光)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내가 고단해야 남이 수월타” 서축암을 세운 월하스님

서축암은 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이었고 통도사 주지(1956)와 총무원장(1979), 통도사 방장(1984)을 지낸 월하스님(月下, 1915~2003)과 수련화 보살, 원행스님이 힘을 모아 1996년 창건한 사찰이다. 월하스님은 1915년 충남 부여군 부여면 군수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 윤씨이고 속명은 희중(喜重)이다. 스승은 통도사의 구하스님(九河, 1872~1965)이다. 월하스님이 평소 입버릇처럼 달고 산 말이 “내가 고단해야 남이 수월하다”였다. 1994년 제9대 종정에 추대됐다. 정문에 걸린 ‘西鷲庵’ 편액 글씨는 월하스님의 친필이다.

통일신라시대 의상스님의 깨달음이 살아있는 서축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아시나요?

서축암의 가장 특이한 점은 무량수전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놓은 화엄경 법문이다. 30개의 배너로 배너당 7글자이니 총 210글자다. 일승법계도는 의상스님이 668년 화엄 사상의 요지를 간결한 시로 축약한 210자로 된 시다. 화엄일승법계도를 직역하면 화엄(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일승(누구나 성불할 수 있는) 법계(진리의 세계) 도(모습)다. 화엄일승법계도에는 일화가 있다. 의상스님의 스승인 지엄스님이 제자의 법계를 읽어 보고는 “뜻은 매우 아름다우나 말은 참 옹색하다”라고 했다. 이에 의상은 어디에나 걸림이 없도록 열심히 고쳤다. 드디어 지엄과 의상이 함께 불전(佛前)에 나아가 이것을 불사르면서 “부처님의 뜻에 계합(契合, 일치)함이 있다면 원컨대 타지 말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원했다. 잠시 후 불길 속에서 타고 남은 걸 수습하니 210자가 되었다.

의상스님은 타지 않은 210글자를 모아 “부처님의 뜻에 계합함이 있다면 원컨대 타지 말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원하며 맹렬한 불길 속에 던졌으나 마침내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스승 지엄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해 칭찬했고 의상은 그 210자를 연결해 게(偈)가 되게 하였다. 화엄일승법계도를 보면 법(法)자에서 시작해 불(佛)자에 이르기까지 54개의 각을 이루면서 210자의 시가 한 줄로 연결돼 있다. 의상스님 자신이 마음속에서 깨달은 진리(自內證)였다. 이 자내증은 완전히 부처의 뜻에 계합하는 불후의 명저다.

서축암에도 다보탑이 있다

서축암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다보탑이 있다. 불국사 다보탑과 거의 흡사한 모양이다.

영축산 극락암에서 ‘경봉스님’을 만나보자

극락암(極樂庵)은 경봉선사의 가르침이 있는 절이다. 석가는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 통도사에는 영축산이 호법신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1만4000여 그루 소나무길이 4계절 푸르다. 극락암은 고려 충혜왕 복위 5년(1344년)에 건립되었다. 무지개다리 홍교와 극락영지에 영축산이 비친다. 홍교를 건너면 피안의 세계다. 영월루에서 영지를 바라보면 물속에 비친 영축산을 볼 수 있다.

경봉스님이 쓴 현판 여여문(如如門)을 지나 극락으로 든다. 변하지 않는 진실이 ‘여여’다. 금강경에 나오는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에서 따온 말이다. 직역하면 “상을 취하지 말고, 여여히 부동하라”다. 상(相)은 여섯 가지에 의해 생긴다.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다. 즉 보여지는 것, 들려지는 것, 냄새 맡아지는 것, 맛봐지는 것, 감촉되어지는 것, 마음에 알아지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에 의해 우린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여겨, 좋다 싫다 예쁘다 맛있다 등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색성향미촉법에 내재된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 마음은 그것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면 마음은 여여부동(如如不動) 상태가 된다. 즉 뭘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경험하더라도 마음은 일체 동요가 없이 언제나 고요한 해탈의 경지가 된다는 것이다. 무량수각은 법당과 원주실을 겸한다. 불상은 조선 후기 석조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청동반자’는 공양 시각을 알리는 징과 같은 법구다. 중앙에 태극무늬 당좌가 있고, 양 측면에 황실과 관련이 있는 명문(대황제폐하만만세大皇帝陛下萬萬歲, 순비저하수제년淳妣邸下壽齊年, 영친왕저하수제년英親王邸下壽齊年, 황태자전하천천세皇太子殿下千千歲, 황태자비전하수제년皇太子妣殿下壽齊年)이 새겨 있다.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한제국 시기 황실의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삼소굴(三笑窟)은 허허허 3번 웃는 굴이다. 바로 경봉스님이 주석한 방이다. 수세전(壽世殿)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전담하는 치성광여래를 모신다. 정수보각(正受寶閣)은 법을 구하는 스님들의 수행처다. 삽삼전(卅三殿)은 곧 조사전인데 지금은 선원으로 쓰이고 있다. 삽삼조사(卅三祖師)는 선종(禪宗)에서 석가모니불의 정통 법맥을 이은 33인의 조사를 말한다. 즉 석가모니가 입멸한 후 불법이 이심전심으로 전승되어 온 인도의 28조(祖)와 중국의 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을 말한다. 달마대사·혜가스님·혜능스님이 삽삼조사다.

극락암 선원에는 1년에 4번 8개월 결제가 이뤄진다. 부처님은 인간 세상을 탐욕으로 불타오르는 ‘불난 집’에 비유했다. 지혜는 광명이요 어리석음은 어둠이다. 경봉스님의 임종에 ‘야반삼경에 대문빗장을 만져 보거라’라는 말이 원광제(圓光齊)에서 들릴 것만 같다. 경봉스님은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는 촛불을 보고 확철대오(廓撤大悟)했다.

경봉스님이 처음 사용한 말, 해우소

해우소는 절의 화장실인데 “충남 동학사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스님이 쓴 말이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경봉은 소변보는 곳을 휴급소(休急所, 급한 마음을 쉬어 가라), 대변보는 곳을 해우소(解憂所, 근심 걱정을 버리고 가라)라 했다. 해우소는 원래 해의소(解依所)였다. 옛사람들이 볼일을 보기 위해서는 속곳, 속바지, 속치마까지 켜켜이 입은 것을 몇 개쯤 벗어야 볼일을 볼 수 있으므로 옷을 벗는 곳이라는 뜻이다. 강원도 영월의 보덕사 해우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뒷간으로서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선암사 등에 있는 해우소는 모두 앞쪽에 칸막이가 없다. 참고로 해우소만의 사용 규칙(주의할 점)이 5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 머리 숙여 아래를 보지 마라. 둘째 낙서 금지, 침 뱉기 금지, 힘쓰는 소리 내지 않기, 셋째 외우고자 하는 게송이 있다면 외워라, 넷째 용변 후 반드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와라, 다섯째 손 씻기 전에 다른 물건을 만지지 마라.

김상범 울산지역사답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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