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같은 재규어 새 브랜드 전략에 머스크 “자동차 팔긴 하나”

2025-02-05

지난해 11월 재규어의 새로운 브랜드 콘셉트 발표가 화제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90년 전통의 자동차 브랜드가 선보인 동영상에는 화려한 분홍색을 배경으로 형이상학적인 의류를 입은 다양한 인종의 모델이 등장한다. 날렵한 재규어를 부각했던 고전적인 느낌의 로고는 부드럽고 둥근 서체를 사용한 디자인으로 변경됐다. 동영상 어디에도 자동차는 등장하지 않아 자칫 패션 브랜드의 광고나 SF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론 머스크가 ‘자동차를 팔긴 하나요’라는 댓글을 남긴 것도 화젯거리였다.

기업 가치 높이는 뉴브랜드 전략

지킬 것과 버릴 것 잘 판단하고

변화의 의미 섬세하게 전달해야

재규어 파격에 ‘과도하다’ 지적도

재규어는 2021년부터 150만 파운드를 투자하며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는 리이매진(Reimagine) 전략을 추진 중이다. 2023년부터는 기존 차량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영상을 통해 새로운 로고와 아이덴티티를 공개한 것도 전기차 브랜드로의 변신 전략의 일환이다. 파격적인 디자인의 전기차 콘셉트카인 타입 제로(Type 00)도 선보였는데, 포르쉐·벤틀리 수준의 가격대로 판매될 예정이다. 전통 자동차업체가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는 첫 사례로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다(copy nothing)’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기존 이미지에서 과도하게 벗어났다는 지적도 들린다.

기업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식의 리브랜딩(rebranding)을 시도한다. 리브랜딩은 좁게는 로고·심벌마크 등 외관을 바꾸는 리디자인(redesign)과 브랜드를 개명하는 리네이밍(renaming)을, 넓게는 브랜드 콘셉트를 변경하는 다양한 전략을 포괄한다. 로고의 경우 최근에는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형태가 선호되는데, 테두리와 음영을 없애고 가볍고 평면적인 디자인으로 변경한 버거킹·프링글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TV나 PC 화면에서 효과적이었던 화려하고 입체적인 로고가 작은 모바일 공간에선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세한 변화가 기업의 미래 전략을 암시하는 중대한 의미를 담을 때도 있다. 2011년 스타벅스는 로고에서 영어로 ‘스타벅스 커피’라고 쓰인 굵은 테두리를 없앴는데, 커피, 영어권 지역을 넘어 사업과 시장을 확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2019년 식품과 음료 사업을 강화하기로 한 던킨도너츠는 기업명에서 ‘도너츠’를 삭제했다. 예측이 어려운 디지털 시대에는 업종을 드러낸 브랜드명이 한계를 가지기도 한다. 브라운관에서 디스플레이 사업으로 전환하며 삼성전관이 삼성SDI로 개명했으나, 이후 사업 중심이 배터리로 변경되자 기업명의 의미가 모호해졌다(원래 S는 Samsung, D는 Display & Digital, I는 Interface & internet component였지만 지금은 이런 설명 없이 삼성SDI가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기아 새 로고 혼동…‘KN car’ 검색 급증

전동화 시대를 맞이한 자동차 업계에서는 재규어에 앞서 이미 많은 기업이 리브랜딩을 실행했다. 폭스바겐·GM 등은 친환경 경영, 서비스 확장 등을 선포하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콘셉트를 적용할 수 있도록 로고를 단순한 형태로 수정했다. 2021년 기아의 리브랜딩은 특히 큰 관심을 받았다. 완성차 생산을 넘은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을 강조하며 기아자동차에서 기아로 사명을 변경했고, 로고의 타원형 테두리를 제거하고 명조체 대신 역동적인 서체를 사용하는 등 변화 폭이 컸다. 초기에는 알파벳을 연결한 새 로고를 혼동한 소비자가 많아 ‘KN car’ 구글 검색이 급증하기도 했다.

국가·도시·비영리기관 등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리브랜딩을 추진한다. 최근에는 터키 정부가 칠면조·멍청이 등 터키(Turkey)가 지닌 부정적 의미를 이유로 국명을 튀르키예(Türkiye)로 개명하는 리브랜딩을 추진해 UN의 승인을 받았다. 2015년에는 뉴질랜드가 국기 디자인 변경을 시도했다. 호주 국기와 분간하기 어렵고 식민지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유니언잭 문양에 불만을 지닌 국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로 새 국기 디자인을 공모하고 최종 후보까지 가렸으나 2016년 마지막 국민투표에서 기존 국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일반적으로 리브랜딩은 낡은 이미지를 지우는 미래 지향적 변화를 위해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과거로의 회귀를 목표로 한다. 정체성이 희석된 브랜드가 흐려진 초점을 재조준하며 리포커스(refocus)를 시도하는 경우다. 2008년 대대적인 리포커스 전략을 펼쳤던 스타벅스는 2024년 또다시 초심을 되찾는 재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저가 브랜드와의 경쟁으로 브랜드 차별성이 사라지고 이익이 내림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구원투수로 영입된 CEO 브라이언 니콜은 “스타벅스로 돌아가자(Back to Starbucks)”고 선언하며 기존 매장, 기본 메뉴에 집중하고 바리스타 문화를 되살려 지역사회의 커피 하우스로 재탄생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가도 필요하면 리브랜딩

리브랜딩은 리더 교체와 맞물려 진행되기도 한다.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는 엑스(X)로의 전면적인 리브랜딩을 추진해 브랜드 상징이었던 파랑새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둔 2020년에는 ‘USA 리브랜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개방성·포용성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중심으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리더로서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미국을 호의적으로 인식한 독일인과 영국인 비중이 2000년 각각 78%, 83%에서 2020년 26%, 41%로 떨어질 정도로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전략적 리브랜딩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변화의 방향과 폭을 결정할 때는 과거와 미래의 연결성과 지속 가능성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특히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일수록 고객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재규어의 파격적 변신에 브랜드 헤리티지를 버렸다는 혹평과 충성고객의 비난이 들리는 이유다. 임기응변식으로 외관이나 구호만 바꾸는 피상적 변신에도 고객은 등을 돌린다.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판단하는 지혜와 변화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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