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장면과 굶어 죽는 아이들 얘기 뒤섞인 TV
사회적 파급력 큰 지상파도 합류한 먹방 예능
수백만원 어치 음식 먹어치우는 예능은 그만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얼마 전에 TV를 보다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다. 먹방 크리에이터 쯔양이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하여 소위 '먹방 여신'임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이날 쯔양은 매니저와 영화관 나들이에 나섰다. 쯔양은 영화관 매점에서 무려 29가지 음식을 주문해 먹었다. 이에 앞서 쯔양은 떡볶이, 햄버거, 피자, 도넛 등 13가지 음식을 해치웠다. 아무리 '위대(胃大)'한 먹방 크리에이터라지만 온 가족이 보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저렇게 많은 음식을 먹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쯔양의 먹방 예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의 다른 방영분에서 쯔양은 촬영 2시간 동안 초밥 101접시를 먹어 치운 뒤 집으로 가던 중 회식을 위해 해산물 식당을 찾기도 했다. 오전 내내 먹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뒤였다. ENA 예능 '어디로 튈지 몰라'에서는 개그맨 문세윤과 먹방 대결을 펼친다. 쯔양과 문세윤은 첫 번째 어탕국수 맛집부터 나란히 국수, 도리뱅뱅, 생선튀김 각각 대 사이즈를 주문해서 거침없이 먹어치운다.
먹방 예능에서 활약하는 먹방 크리에이터는 쯔양뿐이 아니다. 지난달 말 MBN '전현무계획3'에 출연한 '먹방계 톱티어'라는 대식가 이국주와 박광재도 익산 맛집 먹방 투어에 나서서 대식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코미디TV '대식좌의 밥상'을 보자. 이 프로그램에서 '대식좌' 히밥은 가수 서기와 함께 속초와 강릉의 맛집을 찾아 떠난다. 아침 식사로 속초의 회·대게 직판장을 찾은 두 사람은 대게, 활어회, 킹크랩, 꽃새우, 닭새우 등 해산물로 가득한 바다 한 상 차림을 즐긴다. 이들의 한 끼 식사 비용은 무려 84만 원에 달했다.

또 다른 방송 분에서 부산을 찾은 히밥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의 유명 안동갈비 전문점을 방문해 첫 끼로 무려 고기 9인분을 해치운다. 2일 방송된 프로그램에서도 히밥과 가수 서기는 식전 우동을 시작으로 아보카도 덮밥, 명란 오일 파스타, 카레, 스키야키 등을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갈비집에서도 고기 15인분에 냉면까지 먹었다.
인간의 오욕(식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 중 으뜸이 식욕이라지만 예능 먹방을 보고 있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동안 먹방들이 국내외를 드나들면서 맛집 소개를 주로 했다면 이제는 양으로 승부한다. 앞서 보듯이 먹는 양이 매우 많은 걸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나선다. 유튜브의 개인 먹방 크리에이터들이 지상파에 진출하여 대식 경쟁을 펼친다.

민망한 것은 지상파나 케이블TV 등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프로그램, 그것도 황금 시간대에 이런 장면들이 예능으로 포장되어 방송된다는 사실이다. 병적인 폭식을 볼거리로 내세운다는 사실이 슬프기까지 하다. 여전히 비싼 외식 물가 때문에 한 끼 식사가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많다. 그런 시청자들을 향해 수백만 원어치 음식을 먹어치우는 출연자들을 보고 박수라도 쳐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런 먹방 예능 중간중간에 전쟁과 가뭄, 홍수 등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화면이 방송된다. 지나친 폭식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염려에 앞서 이는 윤리적인 문제다. 어떻게 미친 듯이 먹어 대는 장면에 이어 배고파서 우는 아이들의 실태를 담은 광고가 같이 나갈 수 있을까. 재미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그만좀 먹자. oks3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