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면주가에서 설립한 전통술 박물관 ‘느린마을 산사원’ 찾아가 전통주 빚기 체험해보니
술 박물관 연 5만~10만 명 찾아와
한국 주류문화 전시, 시음공간 갖춰
경험 즐기는 MZ에 술빚기 체험 인기
약주 1L, 막걸리 4L를 만들 수 있어

전성기 맞은 ‘전통주’덕 연간 쌀 5600t 소비
‘전통주에 봄이 왔다’ 작년으로 3회를 맞은 ‘대한민국 막걸리 엑스포’는 2024년 참관객 2만 5천명을 기록했다. 특히, 이들 중 MZ세대의 비율이 약 80%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aT)는 전통주의 인기 요인으로 취향에 맞게 술을 섞어 먹는 ‘믹솔로지(Mixology, Mix+Technology)’와 혼술을 꼽았다. ‘부어라 마셔라’에서 적은 양도 맛으로 마시는 믹솔로지·혼술로 주류 산업 트렌드가 옮겨가며 전통주의 매력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 정부의 전폭적 지지도 한몫 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월 간담회에서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소비되는 우리 쌀 규모가 연간 5600t인데, 향후 5년 내 3만t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며 “주세감면 혜택을 늘리고, 소규모 주류 제조면허를 확장하는 정책으로 전통주 시장이 커지길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 전통주 산업은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취향에 맞게 탈바꿈했다. ▶전통주 칵테일 ▶전통주 체험 키트 ▶양조장 투어 등으로 소비가 확장됨에 따라 양조장을 디자인·스토리텔링을 담은 문화 아카이브로 활용하고, ‘술빚기 체험’으로 소비자에게 복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려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산사원’도 그중 한 곳이다. 산사원은 전통술 기업 ‘배상면주가’에서 전통주 제조 과정 및 유물을 계승·보존하기 위해 설립한 전통 술 박물관으로, 1996년 개관해 지금은 연간 5만~10만 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전통주를 빚어보는 ‘가양주(家釀酒) 빚기 프로그램(이하 가양주 교실)’을 운영한다.
‘고두밥’에 따라 술맛 달라져 중요한 단계
체험은 ‘고두밥(술밥) 찌기’부터 시작한다. 불린 쌀을 30분 찌고 10분 뜸을 들이는데, 가운데가 살짝 오목하도록 찜기에 쌀을 고르게 펴야 고루 익는다. 쌀의 익힘에 따라 술이 달라지기 때문에 쉬워 보이지만 중요한 과정이다. 누룩이 곡류의 전분을 분해하면 효모가 분해된 당으로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데, 익힘에 따라 전분의 형태가 달라지면 당분의 구조와 양이 달라져 결과적으로 맛이 달라진다. 보통 멥쌀보다 찹쌀로 빚은 막걸리에서 더 깊은 단맛과 바디감이 느껴진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두밥이 익으면, 넓게 펼치고, 쌀알을 비벼 분리한 후, 병에 담아 물, 누룩, 효모를 넣어 잘 섞는다. 체험은 여기서 끝이 난다. 물론 이대로 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발효가 남았다. 이 과정은 체험자의 집에서 이어진다. 술은 상온 기준 7~8일이면 익는데, 첫날부터 ‘뽀글뽀글’ 소리와 함께 거품과 열이 일어난다. 7~8일이 지나면, 고두밥이 가라앉고 2개 층으로 분리되는데, 상단의 맑은 술만 떠낸 것이 ‘약주’, 아래 술에 물을 첨가해 체에 거르고 당(설탕, 올리고당 등)을 섞은 것이 ‘막걸리’다. 체험 분량으로 약주 1L·막걸리 4L가 나온다.
술을 다 빚었다면, 이제 공간을 살펴볼 차례다. 고(故) 배상면 회장(1924~2013)으로부터 삼 남매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곡 배 회장은 1983년 국순당의 전신인 배한산업을 창립, 88올림픽 당시 ‘외국인에게 선보일 마땅한 토종 술이 없다’며 전통주 제조에 뛰어든 후 1991년 백세주를 개발해 ‘한국 약주’의 시대를 연 인물이다. ‘우곡(又麴)’이란 호는 ‘또 누룩 생각을 하신다’라는 의미다. ‘전통주 한길만 가라’는 부친의 마지막 말을 이어 장남은 백세주를 만드는 국순당, 장녀는 프리미엄 막걸리 ‘부자 시리즈’를 만드는 배혜정도가, 차남은 느린마을막걸리·산사춘을 만드는 배상면주가를 운영하고 있다. 세 곳은 지금도 고(姑) 배상면 회장이 1982년 개발한 ‘생쌀발효법’으로 막걸리를 만든다.
또 박물관에는 탄산가스를 배출하는 독 ‘겹오가리’와 같은 전통주 담금 도구부터 밀주 단속을 피하기 위한 사다리, 주류 취급이 가능한 자에게 부여했던 ‘비표’, 배상면 회장이 생전 출판한 양조기술 계간지 ‘우곡통신’ 등 차남 배영호 대표가 일생에 걸쳐 수집한 한국 주류 문화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부터 배영호 대표가 녹음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는데, 곳곳에 적힌 설명과 그림을 모두 손수 쓰고 그렸다는 부분에서 전통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지하의 시음 공간 역시 놓칠 수 없는데, 산사춘·심술·느린마을막걸리와 같은 배상면주가의 대표작부터 대봉감으로 빚은 ‘호감’, 나주 배와 구운 매실로 빚은 ‘오매락25’까지 양조장의 모든 술을 맛볼 수 있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야외 숙성고 ‘세월랑’
산사원의 비경은 건물 밖에 있다. 숙성주를 품은 항아리가 밭 전(田)자 모양으로 늘어선 야외 전통 증류주 숙성고 ‘세월랑’에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항아리를 따라 걸으면, 소쇄원에서 영감을 얻은 ‘취선각’, 경복궁을 참고한 ‘우곡루’, 전남 부안 만석군 집안 쌀 창고 뼈대를 그대로 옮겨 지은 ‘부안당’을 만날 수 있다. 취선각은 의외의 명성을 얻은 적이 있는데, 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이적이 기타를 치며 ‘말하는 대로’를 작곡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우곡루’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우곡루 끝자락에 서서 천장 도리(道理)를 보면 한자가 쓰인 하얀 물체가 보이는데, 배영호 대표가 술을 묻어둔 곳이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