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숙 수필가
콩국을 끓여야 하는데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형부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 며느리가 잘 해줘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답답하단다.
형부는 자신보다 어린 언니가 먼저 죽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언니가 차려준 밥만 먹었고 숟가락 한 번 씻어 본 적 없는 일상이었다.
어느 날 언니가 후복막암으로, 4개월 후 시누이가 췌장암에 걸려 저세상으로 떠났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황망했다. 자식이 있지만 홀로 남겨진 형부와 아주버님이다.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지내는 시아버지는 자기 걱정하지 말란다.
그렇게 말은 해도 음식을 만들어 시댁에 가면 냉장고는 텅텅 비었고, 설거지통에 씻지 않은 그릇이 가득하고, 쓰레기는 쌓여 있다며 투덜거렸다.
평소에 시어머니 일을 조금만 도와주며 지냈어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며 한숨 쉬었다. 요즘엔 남자도 요리를 배우고, 집안일도 척척 한다고 들어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가 언니나 시누이처럼 먼저 죽거나,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다면 남편도 역시 형부와 아주버님 같은 처지가 될 것은 보나 마나다. 정신이 아찔했다.
남편은 막내로 팔 개월 만에 태어난 팔삭둥이다.
시댁에 갈 때마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시어머니는 사랑을 꾹꾹 눌러 남편 밥그릇에 퍼주었다. 시어머니의 귀하고 애틋한 아들이다.
나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살림보다는 회사 일이 우선이었다. 남편과 나는 휴일에 설거지와 청소, 세탁 등 할 일을 조금씩 익혀갔다.
살림에 익숙해질수록 흰머리는 늘어났다.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홀로 사는 동창 이야기를 들려줬다.
구속은 없지만 먹는 게 부실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날은 청소며, 설거지, 밥하기 등 적극적이다.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은 나보다 십 년이나 어리다.
내가 먼저 죽거나 아플 경우 우선 필요한 것들, 계절별로 옷 찾아 입기, 식재료 구매하기 등 하나하나 익혀간다.
생활필수품과 쌀, 식재료 등 단골로 다니는 가게에 남편과 순례했다. 이제는 어디에서 장을 보는지, 어떤 물건이 좋은지 식별한다. 때가 되면 남편이 밥을 하고 반찬과 국은 내가 만든다.
바빠서 씻지 않고 쌓아 둔 그릇도 척척 씻어버린다. 일요일에 공간 정리하고, 계절에 따라 선풍기 닦는 일 등은 공동으로 한다. 반복되는 집안일에 일머리를 깨우쳐 가는 남편이 고맙다.
나는 외할머니와 엄마가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왜 여자만 노동에서 놓여나지 못하는지 계속 불만이었다. 결혼해서 보니 바로 나에게 닥친 문제였다. 서로 부족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과 나는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제는 남녀 간의 노동 문제가 아니라 함께 늙어 가고 있는 노년의 문제다.
남편이 홀로 되었을 때 적어도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알아야 덜 고달프지 않을까.
누나의 죽음을 겪고 나서 자연스럽게 간단한 아침 식사 당번은 남편이 자청했다.
“고 여사 식사하세요.”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