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묻는 까닭, 이 다큐 보면 나온다

2025-05-22

4살이 되던 해 공습을 겪었다. 10대엔 애니메이션 감독의 꿈을 꿨다. 살면서 경제성장과 자연파괴의 양면을 목격했다. 50대엔 버블 붕괴·소련 해체 등을 겪으며 자신이 알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70대에 와선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자연이란 벽을 실감했다.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84)의 생애다.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40주년을 맞아 제작된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이 한국에서 28일 최초 개봉한다. 다큐는 미야자키의 일대기를 따르며 그의 작품 세계를 정리한다. 특히 미야자키가 작품을 통해 꾸준히 말해 온 ‘자연주의’에 주목했다.

다큐멘터리는 프랑스 감독 레오 파비에(40)가 연출했고,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종이를 뒤적이며 손으로 애니메이션을 빚어내는 미야자키의 모습이 담겨있지만, 그의 인터뷰는 싣지 못했다. 대신 과거 촬영된 자료 영상을 삽입하고 국내에서 2013년 출간된 미야자키의 에세이와 대담 등을 담은 책 『출발점 1979-1996』, 『반환점 1997-2008』을 인용했다.

나아가 수잔 네이피어, 카노 세이지(叶精二) 등 미야자키 작품의 평론을 쓴 작가들과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 등의 인터뷰로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그의 아들이자 지브리 미술관 디자인을 맡은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해 온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鈴木敏夫)도 출연한다.

레오 파비에 감독은 지난해 미국 매체 애니메이션 월드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매우 자전적”이라며 “그는 자신의 기억과 이야기를 영화에 넣는다. 알고 나면 더 잘 보이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감독은 미야자키의 삶과 사회적 상황, 그가 영화를 만든 이유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 다큐로 엮었다.

꿈과 광기의 왕국(2013), 미야자키 하야오의 19년(2019), 미야자키 하야오와 왜가리(2024) 등 미야자키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여러 편 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연출한 경우는 없었다.

다큐는 미야자키를 마냥 신격화하지 않는다. 미야자키란 사람을 보여줄 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우쓰노미야(宇都宮) 야간공습과 원자폭탄 투하를 겪으며 반전의식을 키웠지만, 동시에 전쟁 무기의 부품을 만들던 아버지와 삼촌의 영향으로 비행기에 매혹을 느끼기도 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속 공습 장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와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속 폭탄이 폭발하는 모습은 그가 봤을 전쟁의 하늘이 떠오른다. ‘붉은 돼지’(1992)의 비행정, ‘바람이 분다’(2013)의 전투기는 그가 좇았던 비행의 꿈이 반영됐다.

미야자키의 생각은 장면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발전한다. 인간으로서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지에 대한 그의 고민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처음 등장한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의 흥행 실패 후 스즈키 토시오를 만나 1982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란 제목의 잡지 연재만화로 돌아올 기회가 생기면서다.

그의 초기작은 자연과 교류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업 문명의 붕괴 후 생존한 소수 인류를 다룬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일본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토토로라는 신비한 생명체를 그린 ‘이웃집 토토로’(1988)가 대표작. 이를 통해 환경보호·평화의 가치를 말했다.

1991년이 되자 아시아 경제의 버블이 붕괴하고, 소련이 해체된다. 당시 유럽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발발 후 ‘붉은 돼지’의 배경이 되는 두브로브니크 폭격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야자키는 작품을 통해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붉은 돼지’와 ‘모노노케 히메’(1997) 등은 이제까지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자연의 강렬한 힘을 매력적으로 표현한 영화 ‘벼랑 위의 포뇨’(2008)를 만든 미야자키는 3년 후 동일본 대지진을 목격한다. 자연재해에 이어 기후위기 시대를 겪게 된 그는, 오래도록 품은 질문을 관객 앞에 내려뒀다. 자신의 삶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가 제목을 통해 던지는 명료한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사용할 때마다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AI(인공지능)에 ‘지브리 풍 그림을 그려줘’ 적는 사람들을 보며 미야자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아직 모두 보지 못했다면, 85분 가량의 이 다큐는 그의 생각을 가늠해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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